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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4090) : 안도징(2)-안도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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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징(安道徵) : 본관(本貫) 순흥(順興), 시대(時代) (1616∼1678), 자(字) 태화(泰和), 호(號) 점녹와(點彖窩)/ 이력(履歷)/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點彖窩先生文集/ 安道徵 (1616∼1678) ; 字 泰和, 號 點彖窩, 本貫 順興./ 木板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隆熙2(1908). / 2卷1冊 ; 31.8x21.6cm. / 四周雙邊. 半匡 ; 19.6x15.5cm.有界.10行18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조선 후기의 학자인 안도징의 시문집이다. 안도징은 참의 직(?)의 아들이며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생 문학을 업으로 삼고 초야에 은거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 이 문집은 1908년 후손 구진(球鎭), 영일(永一)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詩)는 차운시와 증시가 많은 편이다. 「답권신중시(答權申仲詩)」는 옛 친구를 만나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 그 시상을 읊은 것인데 "앞산 작은 다리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네"라 하여 그 한적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書)의 「답홍응도(答洪應圖)」는 음양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 《주역》 계사편(繫辭篇)을 인용 자신의 견해를 답한 것이다. 제문 가운데 「홍목재응도(洪木齋應圖)」은 친구 홍응도에 대한 제문인데 그의 청백한 성품과 모범적인 행위, 학문의 대성함을 추억하며 제사한 글이다. 기(記)의 「죽계유허기(竹溪遺墟記)」는 죽계는 소백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순흥(順興)의 별호(別號)인데 고을의 이름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으며 안향(安珦)과 안축(安軸) 등이 살던 곳이기도 하고 주변의 산천과 지세를 논하고 순흥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다. / 序 ; 柳道獻. / 目錄./ 卷之 1. 詩(80首)./ 書 ; 答洪應圖, 寄子機石./ 祭文 ; 祭洪木齋應圖, 祭舍兄松坡公, 祭從子漢石./ 序 ; 順興安氏族譜./ 記 ; 竹溪遺墟./ 跋 ; 敬書先朝考文懿公質齋先生軒號考證, 敬書七代祖考通政大夫行承政院同副承旨兼 經筵參贊官寶文閣直提學紙製 敎閱春秋館編修官府君大司諫 恩牒, 敬書就正弟三派永和公譜牒, 敬書安氏廣州順興分派世系圖./ 行狀 ; 先祖文懿公質齋先生, 先祖忠靖公蘆浦先生, 曾祖考朝散大夫行刑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府君家狀, 祖考 贈承議郞工曹佐郞府君家狀, 先考 贈通政大夫工曹參議府君遺事. / 卷之 2. 附錄 ; 詩, 點彖窩銘, 祭文, 遺狀, 行狀, 墓碣銘, 墓誌, 點彖窩上樑文, 點彖亭記, 講學所重建契案序. / 跋 ; 安永一, 安球鎭.(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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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1961- , 호명면 황지리 523번지 출신, 오성의 장남, 안동 풍산초등 6학년 때 대구 아양초등 전학, 경북대사대부중, 대건고, 원광대(圓光大) 국어국문학과 졸업, 89년 전교조(全敎組) 해직 교사, 90년 2월 23일 대구의 북카페 '그리운 시인'의 초청으로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94년 전북 장수군 신서면 신서고등학교에 복직했다. 97년 전업(專業) 시인으로 전업(轉業), 2004년 우석대학교 예체능대 문예창작과 전임강사이다. 81년 매일신문 및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저서로 5권의 시집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7)>와 2권의 동화집 <연어(1996)> <관계(1998)>를 펴내었다. 그리고 98년 사진에세이집 <사진철(寫眞綴)>을 펴내었다. 그의 시에는 사물이 의인화하여 나타나거나 불교적 성격과 관조(觀照)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고, 나아가 선시와도 같은 깨달음도 들어있다. 또한 동화 <연어>처럼 동심과 닿아있다. 그의 시 세계(詩世界)가 호흡이 긴 서사적 구조(敍事的構造)에서 압축을 통해 시문학 본래의 자리로 옮아가고 있음을 보였다. 98년 '고래를 기다리며' 외 7편으로 제13회 소월시문학상(素月詩文學賞)을 수상하였다. 시힘동인이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 따뜻한 서정성(抒情性)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시들을 담고 있다. 사랑의 길 위에서 이룩한 시적 성취는 너→마을→조국→통일로 확산되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그 사랑 속에는 상실(喪失), 부랑(浮浪), 분노(憤怒), 억압(抑壓), 그리움, 기다림과 같은 삶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서들이 녹아들어 있다. 이 시집은 51편의 시와 김훈의 해설 '길 위의 사랑, 길 밖의 사랑'를 싣고 있다.(每日新聞 1991.2.23, 醴泉文學 6輯(1992), 醴泉新聞 1996.3.21 1996.9.19 1997.8.14 1998.3.5 1998.6.25 1998.7.30, 엠파스 人物檢索 2004)
안도현([冊의 香氣] '詩와 소리의 만남' 국효문·안도현 詩人 招請) [記事] : 헛헛한 가을날, 감동 전하는 시 한편과 함께 꽃이 지고 있다. 미련 없이 떨어지는 낙화엔 구차함은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아쉬움은 고독으로 이어지고, 그 빈 자리를 시가 대신한다. 2009년 10월 30일 오후 3시 스타상호저축은행 부설 고하문예관에서 열리는 '제17회 시와 소리의 만남'엔 국효문 시인과 안도현 시인이 초대됐다. 국 시인은 이날 시 '사랑에게', '모닥불', '영산강'을 낭송한다. 부르튼 맨발로라도 달려나가고픈 목마른 사랑이 담긴 시 '사랑에게'와 시인의 사랑과 외로움이 수없이 피었다 지는 이야기가 담긴 시 '모닥불'이 소개된다.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파란 핏줄을 형상화한 시 '영산강'에선 동학의 함성이 담겼다. 국 시인은 광주 출생으로 197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부회장, 광주 여류문학인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호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일갈했던 안도현 시인도 이날 함께 한다. 시 '입추'로 가을을 맞고, 가을볕에 말린 흐릿한 국화꽃 냄새가 묻어난 시'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를 낭송한다. 시'직소폭포'는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 위로 삶의 기나긴 비명이 담겼다. 경북 예천 출생인 그는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화정>(全北日報 2009-10-30)
안도현(안도현 詩人, 백석文學賞 選定) [記事] : '제11회 백석문학상'에 안도현 시인(48·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음식을 통해 따뜻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했다는 평을 받은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상금은 1000만 원이다. (주)창비가 주관하는 백석문학상은 1999년 백석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으로, 전북에서는 2005년 정양 시인이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로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집은 백석 세계에 가장 잘 접속된 근친언어로 되어 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안 시인은 경북 예천 출생으로 원광대 국어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월시문학상, 원광문학상, 모악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주하림(23), '제12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이반장(27), '제16회 창비신인평론상'에는 김영희(32) 씨가 각각 선정됐다. 시상식은 2009년 11월 2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도휘정>(全北日報 2009-11-09)
안도현(안도현(虎鳴面 出生) 詩人 백석문학상 受賞) [記事] : 호명면 황지리 태생의 안도현(49) 시인이 2009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제1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고(故 ) 자야(子夜, 본명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에 제정되었으며,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안도현 시인의 수상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대해, “소중한 근원인 향토와 음식에 뿌리박은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개성적인 시세계를 일궈내고 있다는 평가에 합의한 것으로 심사경위에서 밝혔다. 안도현 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현재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醴泉新聞 2009년 12월 17일 14:38:49)
안도현(안도현 詩人 <연어 이야기> 펴내) [記事] : 지난 1996년 동화 <연어>를 내놓은 호명면 황지리 태생의 안도현(49) 시인이 15년 만에 신작 <연어 이야기>를 펴냈다. <연어>는 은빛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눈맑은연어를 만나 알을 낳고 죽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를 선도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114쇄를 찍어 약 90만부를 판매했다.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연어 이야기>는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딸인 ‘나’의 얘기,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의 알에서 나가 알을 찢고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에서 빠져나가는 날, 누군가 나에게 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작정이었다. 알이라는 두려움을 동그랗게 빚어 만든 말랑말랑한 구슬, 이라고.”(12쪽) 두려움이라는 작은 구슬을 뚫고 나온 나의 앞엔, 다시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경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단. ‘연어’가 은빛연어가 눈맑은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폭포를 거슬러 오르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연어 이야기’는 알에서 깨어난 나가 사랑을 알아가며 다시 험난한 바다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는다. 158쪽, 7,500원, 문학동네(醴泉新聞 2010.5.27)
안도현(文學의 産室 慶北…詩人 안도현의 醴泉-下) [記事] : 시인이 다녔던 풍산초등에는 일제 때 심었다는 플라타너스가 아직도 운동장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있다. 시인은 풍산초등을 6학년 봄까지만 다니고 사촌형을 따라 대구로 유학을 나왔다. 꽤나 이른 탈향이었다. 그 이른 탈향은 시인이 간절하게 시를 쓰게 된 계기나 다름없었다. 때 이른 脫鄕… 사무친 그리움 간절하게 시인이 되길 바랐다. 음식은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재생한다. 고향의 풍경이 그려내는 시각의 유혹도, 방언이 잡아당기는 청각의 매혹도 음식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혀를 통해 감지된 가장 원초적 감각인 미각의 기억. 우리가 고향이라는 케케묵은 명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케케묵은 음식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은 음식이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산해진미든 음식에 대한 기억은 서열이나 계급이 없다. 우리는 고향의 음식 앞에서 무장해제 당하기 일쑤다. 낙동강 상류인 경북 북부지역은 산악지대가 대부분이어서 논이 적다. 타지에 비해 식재료가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거기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거기서 길들여진 음식이 유난히 각별하고 짠할 수밖에 없다. 음식이 나라는 인간을 키운 탓이다. 이 지방 음식에는 유독 콩가루가 많이 들어간다. 칼국수나 건진국수는 타지에 비해 콩가루의 배합률이 아주 높다. 건진국수는 옛적 여름날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 만들었다는 음식이다. 칼국수를 찬물에 씻은 뒤 미리 준비해둔 멸치국물에 고명을 얹어 먹는데, 이 역시 밀가루에 콩가루를 적잖게 섞어야 면발이 고소해지고 퍼지지 않는다. 또 콩가루는 묵은 시래기찜이나 풋고추, 혹은 정구지찜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좋았다. 칼국수와 만두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주무르는 일은 신기했고, 닭개장을 만들기 위해 암탉의 목을 비틀고 털을 뽑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놀림을 바라보는 일은 늘 아슬아슬했다. 외할머니와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며 밥 익는 냄새를 기다릴 때, 나는 마치 붉은 불을 운전하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 가을날, 내가 잡아온 물고기들을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물고기는 가을 물고기가 역시 최고지." 아버지는 술안주를 생각하며 그렇게 말씀하셨겠지만, 나는 그때 '가을'과 '물고기'라는 언어가 결합할 때 어떤 향취가 나는지 처음 알았다. 음식에 관한 기억은 이렇듯 또렷해서 내가 과거에 먹은 것, 씹은 것, 마신 것, 뱉은 것을 비롯해 음식을 주인공으로 삼아 20여 편의 시를 썼다. 이 시들은 아홉 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2007)에 실려 있다.
태평추라는 음식을 아시는지.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 보기는 했으나, 삼십 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 지와 김 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 가루를 혀끝으로 떼어 먹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 '예천 태평추'의 앞부분/ 다른 지역에서는 묵밥, 혹은 묵무침 정도로 부를 것 같은 음식이다. 그렇게 쉽게 불러도 될 터인데 예천 사람들은 왜 태평추라는, 사전에도 없는 자못 심각하고 점잖은 이름을 붙였을까. 이 나라 어디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을 듣지 못했다. 몇 해 전, 예천 읍내 어느 식당 간판에 태평추라는 말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나는 심장이 마구 요동치는 듯했다. 그리하여 삼십 년 넘게 먹어보지도 못하고, 발음해보지도 못한 태평추라는 음식의 근원과 말의 뿌리를 시를 통해 따져보고 싶었다. 가난하고 힘겹게 살던 옛 사람들은 차가워진 묵을 데워 먹으며 뜨끈한 태평성대를 꿈꾸었을까.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그 이름에 궁중음식 탕평채의 하중을 실어 스스로 무게감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까. 음식 이름 하나에도 고향은 이렇게 알싸한 것. 나는 가겟집 아이였으므로 우리 집에는 군것질거리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한겨울에 칠성사이다를 달라고 조르다가 내복 바람으로 쫓겨난 적도 있다. 그렇게 열두 살까지 가게에 방이 하나 딸린 풍산의 안교동 셋집에서 오래 살았다. 그 단칸방은 서너 평 되었을까. 오글오글 살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연탄불 꺼진 날 솜이불 덮어쓰고 개구리같이 쪼그리고 있으면 / 동생과 내 입김으로 서로 훈훈해져서 금세 잠들고 말던 집 / 셋째와 넷째가 태어나도록 우리 여섯 식구는 이사도 안 가고 / 그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예천농고 농구선수였다는 아버지 / 주무실 때 두 다리 쭉 뻗는 걸 한 번도 못 보았으며 / 그래서 이불이 천막 같아서 잠잘 때마다 무릎이 서늘하던 집 - '집'의 일부분/ 풍산은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곳이다.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장터를 통과해야 했다. 흥청대던 장날 풍경은 마치 잔치 같았다. 특히 우시장으로 몰려들던 검은 코트의 소장수들은 언제 보아도 어깨가 넉넉했고, 입으로 불을 뿜는 차력사는 위대하였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은 뼈대만 앙상한 각목 구조물 사이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 풍산장터에서 나는 지나가는 소달구지에 매달렸고, 자전거 타는 걸 처음 배웠고, 국회의원 후보들의 유세에 귀를 기울였으며, 가설극장을 기웃거리거나 저녁이 되어도 귀가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갈매기옥'이라는 간판을 단 술집 마당을 자주 밟았다. 아버지의 가게는 한순간에 기우뚱거렸다.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농협의 슈퍼체인 시스템이 자생적 소상인이 설 자리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 길을 찾아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질수록 가게의 물건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70년대 초반의 산업화 바람은 작은 면 소재지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도시로 오라고 달콤한 사탕을 내밀었다. 나도 도회지로 나가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일제 때 심었다는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운동장 가운데 버티고 서 있던 풍산초등학교를 6학년 봄까지 다니고, 나는 사촌형을 따라 대구로 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꽤나 때 이른 탈향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유폐시켰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간절하게 시인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게 많았으므로.
붉은 리트머스 종이 위로 가을이 한창 물들어갈 무렵 / 내 소풍날은 김밥이 터지고 운동회 날은 물통이 새고 / 그래 그날 주먹 같은 모래주머니 마구 던져대던 폭죽터뜨리기 / 아아 그때부터였다 청군 백군 서로 갈라져 / 지금에 이르고 감추어둔 비둘기와 오색 종이가루를 찾기 위하여 / 우리가 저 높은 곳으로 돌멩이 같은 것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 그런데 소식도 없이 기러기 기러기는 하늘에다 길을 내고 /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변방으로 위문편지를 쓰다가 / 책상 위에 연필 깎는 칼로 휴전선을 그었다 / 그 부끄러운 흔적 지우지 못하고 6학년이 되었을 때 / 가슴속 따뜻한 고향을 조금씩 벗겨내며 처음으로 / 나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고 계집애 / 고 계집애는 실처럼 자꾸 나를 휘감아왔다
#시인 안도현은 1961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을 냈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嶺南日報 2010-08-23)
안도현([잊을 수 없는 밥상](16) 안도현 詩人) [記事] : "갱죽·무밥·전어속젓·매생이죽…'맛의 고장' 전주의 따스한 기억 불러내" 안도현 시인(49·우석대 교수)은 비빔밥처럼 잘 비벼진 전주에서 '적당히' 외롭게 산다. 시인은 전주는 1시간 거리에 평야와 바다, 산이 있어 비빔밥처럼 잘 비벼진 도시라고 말한다. 이렇듯 전주는 적당히 외로워하고, 적당히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외로워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아니면 인간들이 너무 많아 안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전주는 그런 허기를 모두 채워주는 곳이죠." 대건고 시절 문예반 스타였던 그는 익산 원광대로 유학을 왔다. 소설가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를 배출한 데다 문예장학생을 뽑는 학교라는 점에 매료됐다. 전라도 쌀을 먹고 산 지가 30년. 이 땅은 시의 자양분이 됐다. 경북 예천에서 자란 그는 처음 콩나물국밥을 맞닥뜨렸을 때 선뜻 먹기가 힘들었다. 뭐 이런 죽밥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막걸리집을 비롯해 비빔밥, 한정식, 백반, 돌솥밥, 국수, 떡갈비에 오모가리탕, 가게에서 파는 맥주와 안주까지 곁들여지는 '가맥'을 즐기는 전주 사람이 다 됐다. 청어구이에 닭고기 미역국, 생두부, 더덕, 번데기 등 열 몇 가지 안주가 '쫙' 깔리는 막걸리집 안주상은 전주를 못 떠나게 하는 음식들이다. "음식이란 단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닙니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정성과 맛보는 이의 기쁨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감정을 나누는 좋은 매개체죠. 시 창작 강의를 할 때도 '음식을 잘 만들어야 시를 잘 쓴다'고 말하곤 합니다. 음식이 환기하는 기억과 풍경을 불러내는 일도 시인의 몫이거든요." 시인은 이어 "라면을 끓여도 자기 식대로 요리하려는 생각이 창의적 시 쓰기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한번은 어느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촌놈아, 병어회는 깻잎의 뒷면으로 싸먹어야 입안이 꺼끌하지 않아." 이름 모를 주모의 지청구가 어쩐지 축복 같았다. 시인에게 음식이 주는 행복은 이런 것이다. 시 '예천 태평추'는 '태평추'의 기억을 쫓아가게 하는 작품이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 김과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음식. 시인은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 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를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먹고 마시는 일이 풍류의 하나라면 전주는 풍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 2004년 출간한 시집 「간절하게 참 철 없이」(창비)는 우리의 전통 먹거리에서 소재를 찾아 지나간 추억의 발자취를 더듬은 작품. 갱죽, 무밥, 전어속젓, 매생이국 등 토속 음식은 옛 공동체의 따스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갱죽')을 먹어야 했던 시절 먹이는 것은 가장의 버거움과 긍지가 있었다. 매생이국에서 사랑을, 간장게장에서 모성을 떠올렸다. 시인이 올해 펴낸 동시집 「냠냠」 에서는 아이들에게 먹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아이들에게 밥이 하늘처럼 귀하고, 밥 한 숟가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이 제 동시를 읽고 안 먹던 음식에 관심을 갖고 요리도 직접 해보며 먹는 일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음식을 맛보면 그대로 만들 수 있다"는 그는 동시집 출간을 준비하면서 초등학교 식단을 점검하고, 음식 관련 논문도 챙겼다.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소리와 씹을 때 나는 소리, 냄새까지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누룽누룽 누룽지, 파마한 라면, 퀴퀴한 김치 악당, 빗줄기로 만든 국수, 불자동차 떡볶이 등은 이렇게 탄생됐다.
시인은 휴대전화가 없다. 4년 전 우연히 휴대폰을 잃어버린 후 아예 안가지고 다닌다. "집 전화, 학교 전화가 있기 때문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는 그는 "굳이 말하자면 휴대전화 없는 생활도 전주여서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전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듯 보였다.(이화정 全北日報 2010-10-22)
안도현(안도현 詩人 招請 文學 講演會) [記事] : 수성구립용학도서관은 2010년 11월 26일 지하1층 시청각실에서 ‘ 연어’, ‘관계’ 등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안도현 시인을 초청해 문학 강연회를 갖는다. 이번 초청 강연회에서 안 시인은 ‘연어의 긴 여정 속에서 배우는 지혜’ 라는 주제로 지역 주민들에게 강연할 예정이다. 안 시인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 으로 등단한 뒤 이수문학상(2005)과 윤동주문학상 (2007)을 수상했다. ‘아침엽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외롭고 높고 쓸쓸한’, ‘짜장면’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접수는 18일부터 24일까지다.(每日新聞 2010-11-11)
안도현(안도현의 ‘알리는 바보가 아니다’) [記事] :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화제에 올랐던 공익광고 문구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녀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똑똑한’ 삶을 살기 원한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꿈과 이상을 좇는 자식은 철부지 취급을 받는다.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뛰놀아야 할 어린 시절을 학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에게 꿈꿀 시간은 없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고 앞만 보며 달려온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다음 세상을 만들어 나갈까?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안도현 작가(49)의 ‘알리는 바보가 아니다’(계수나무)가 출간됐다. 이 책의 주인공 알리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쏙 빼닮은 소년이다. 지저분한 외모에 어딘가 덜 떨어진 표정을 짓고 다니는 알리를 보고 어른들은 제발 그 ‘바보 같은 놈’과 어울리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알리는 ‘벌레들이 발에 밟힐까 봐 땅을 보고 걷는’ 따뜻한 심성을 가졌고, ‘텔레비전 하나로 잔치를 연출’하며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소년이다. 세상은 알리 같은 바보들에 의해 아름답게 성장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자기 실속만 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순수하고 용기 있는 자들이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을 사랑하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했던 알리는 바보 같은 삶을 살았지만, 알리 같은 바보가 있어 세상은 그나마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을 따라갈 줄 알았던 알리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걸, 책을 읽은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국문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저자는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연탄, 도토리 등 작고 소박한 소재를 등장시켜 현대 사회의 단면과 문제점을 보여 주고, 그 속에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외에도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림에 김준영(34)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동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세밀화를 그리면서 어린이 책 작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어린이 책,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혜경 記者 새全北新聞 2010-11-24)
안도현(문학수도 하동서 ‘북콘서트’ : 31日 文藝會館… 詩人과 함께하는 公演·詩朗誦 等, 정호승 詩人 정일근 詩人 안도현 詩人) [記事] : 지난해 ‘문학수도’를 선포한 하동군이 문학과 음악, 책이 어우러지는 ‘북콘서트’를 2011년 10월 31일 오후 7시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연다. 한국문인협회 하동군지부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는 정일근·정호승·안도현 시인과 함께하는 이야기 공연과 지역민과 같이 즐기는 시낭송, 시노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하동 출신인 정호승 시인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첨성대’로 시 부문에 당선된 이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작품이 있다. 진해 출신의 정일근 시인은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고, 경남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북 예천 출신인 안도현 시인은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서울로 가는 전봉준’ 등의 작품을 썼으며,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김윤관 記者 慶南新聞 2011-10-27)
안도현(안도현 詩人은, 짧고 쉬운 詩…'하찮은'것에 따스한 生命 불어넣어) [記事] : 우리나라 시인 중 최근 10년간 시집 판매량이 가장 많은 시인은 누굴까? 안도현 시인이다. 이는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이 시집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다. 그러면 우리나라 시인 중 가장 연애하고 싶은 시인은 누굴까? 안도현 시인이다. '접시꽃 당신'이란 시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꼽은 것이다. 이것은 무얼 말할까? 안도현 시인의 시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짧고 쉽다. 그러면서도 따뜻하다. 특히 그는 우리 곁에 있는 작고 하찮은 것을 자주 다룬다. 그 동안 발표한 1000여 편의 시가 대개 그러하다. 하지만 시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 "난 시를 한번도 한꺼번에 다 써본 적이 없다. 시를 참 치사하게 쓴다. 평균 50번 정도의 수정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 그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각별하다. 전북의 산하와 전북사람들의 삶을 푸근하게 그린 작품이 많다. 안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건고 시절 학원문학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981년 문학하기 좋다는 원광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며 대학 4학년 때인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졸업과 함께 이리중 국어교사로 부임했으나 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 1994년 복직돼 장수 산서고로 발령이 났다. 1997년 교사직을 그만 두고 8년 동안 전업작가로 생활했다. 2004년 우석대에 문예창작과가 생기면서 교수가 되어 '시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점도 특이하다. 그 동안 그대에게 가고 싶다 등 9권의 시집을 펴냈다. 동화와 에세이 등에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996년 첫 출간 이후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또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8개국에서 번역돼 읽히고 있다. 짜장면 등 어른을 위한 동화 8권, 산문집 3권, 동화집 10여 권을 펴냈다. 2002년에는 서일본신문에 에세이 50회를 연재하기도 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모악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의 상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전북대와 원광대에서 한국어강사를 하는 부인 박성란 씨(50)와 북경대와 고려대 중문과 대학원을 마친 딸 유경(28), 성균관대 사학과에 다니다 입대한 아들 민석(22)이 있다.<조상진 全北日報 2012-01-03)
안도현(군포, ‘詩人 안도현’ 招請 講演會 開催) [記事] : 군포시는 2012년 2월 23일 오후 2시 시청 2층 대회의실에서 안도현 시인을 초청, '시적인 순간을 만나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한다. 안도현 시인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 으로 등단한 뒤 이수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아침엽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외롭고 높고 쓸쓸한'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는 3월에는 만화가 강풀 씨가 밥이 되는 인문학 강사로 군포시민과 만날 예정이다.(박성훈 記者 京畿日報 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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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