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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23:홍씨들4(祝명당서실/예천방문444)
작성자장병창 @ 2009.06.05 06:55:54
  예천의 자랑(1923) : 예천의 홍씨들(4)(附 예천읍 명당서실, 각종 서예대전에서 입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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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원휘(洪思元暉) : 예천읍 백전리 49-2 문화주택 101호 출신, 본관은 남양, 성집(聖集)의 아들, 2002년 외무고시 제36회 합격,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 통상진흥과 외무관이다.(醴泉鄕校誌 2004)


  홍사원휘(홍사원휘 氏 外務考試 合格) [記事] : 제36회 외무고시에 홍사원휘(25·예천읍 백전리) 씨가 최종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홍씨는 예천초등 2학년 때 조치원에서 전학을 와 대창중(92년 졸업)ㆍ안동고·서울대학교 정치학과(2000년)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홍씨는 아버지 홍성집(54·감천면 예비군중대장) 어머니 김돌숙(52)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중 장남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줄곧 장학생으로 우등상을 독차지했다. 어머니 김씨는, “아버지가 직업 군인으로서 27번 집을 옮기면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학업에만 전념한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대견해 하고 있다. 온순하고 과묵한 성격에 노력형인 홍씨는, “외교관이 되어 나라를 위해 작은 밀알이 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醴泉新聞 2002-07-04 10: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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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칠(洪性七) : 1980- , 예천군청 양궁팀 남자선수단원이다. 1997년 3월 제31회 종별선수권 개인종합 2위ㆍ단체 1위, 동년 6월 제2회 코리아컵 국제대회 단체 2위, 동년 8월 제39회 세계선수권대회 단체 1위, 동년 10월 제78회 전국체전 개인종합 1위ㆍ단체 1위(3관왕), 동년 11월 제10회 아시아선수권 개인종합 2위ㆍ단체 2위, 1998년 7월 제25회 중고연맹 개인종합 1위ㆍ단체 1위, 1999년 6월 유럽 그랑프리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ㆍ단체 1위, 동년 7월 제40회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1위ㆍ단체 2위, 동년 백상체육상 수상, 동년 대한체육회 최우수선수상 수상, 2000년 2월 상무에서 전역하여 2001년 3월 예천군청 입단이다. 2002년 1월 30일 성남 국군체육부대 선승관에서 열린 서울 국제실내양궁대회 남자부 결승에서 최원종(상무, 예천읍 출신)을 117-115(120점 만점)로 꺽고 우승을 차지했다. 1회전에서 남자 세계랭킹 1위 리오넬 토레(프랑스)를 117-115로 누르는 등 최고의 컨디션을 과시하며 우승 상금 5천 달러를 받았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中央日報 2002.1.31, 朝鮮日報 2002.1.31)

→예천의 자랑(995) : 원류리 출신 홍성칠 판사, 오늘 상주지원장으로 피임(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02-11 照會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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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칠(홍성칠 室內洋弓 男子個人 優勝) [記事] : 실내양궁은 지름 20㎝의 표적을 18m 거리에서 쏘아 승부를 가리는 겨울철 경기. 한국양궁은 장소를 실내로 옮기고 사거리를 줄여도 역시 강했다. 홍성칠(예천군청)이 2002 서울국제실내양궁대회 남자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99세계선수권 챔피언 홍성칠은 2002년 1월 30일 성남 상무 선승관에서 벌어진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최원종(상무)을 117-115로 꺾고 정상에 올라 상금 5,000달러를 획득했다. 홍성칠은 한 수 위 기량으로 12발 가운데 9발을 골드에 적중시켜 결승에서 흔들린 최원종을 여유있게 제압했다. 홍성칠은 이에 앞선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토레스(프랑스)를 물리친 데 이어 4강전에선 시드니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프랜질리(이탈리아)를 제쳤다. 번외 경기로 벌어진 여자단체전에선 윤미진(경기체고)·김경욱(현대모비스)·강현지(토지공사)를 내세운 한국이 발레바(이탈리아)·카타리나(우크라이나)·윌리엄슨(영국)으로 맞선 월드팀을 256-254로 꺾어 체면을 지켰다.(권부원 記者 京鄕新聞 2002년 01월 30일 20:13:28)

  홍성칠(서울國際室內洋弓 홍성칠, 男子部 優勝) [TV放送] : 예천군청의 홍성칠이 서울국제 실내양궁 대회에서 남자부 정상에 올랐습니다. 홍성칠은 국군체육부대 선승관에서 열린 남자부 결승전에서 상무의 최원종을 117대 115로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친선 경기로 벌어진 여자단체전에서는 우리대표팀이 월드스타팀을 256대 254로 이겼습니다.([스포츠] 박현철 記者 입력 시간 : 2002.01.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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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영(主婦 便紙쓰기大會 銀賞 醴泉 홍순영 氏) [記事] : 우정사업진흥회가 경향신문 후원으로 실시한 제11회 전국주부편지쓰기대회에서 홍순영(예천) 씨가 은상을 차지했다. 총 응모작 2,363편 중 예심을 거친 400편을 시인 황금찬씨 소설가 구혜영·백시종 씨 아동문학가 엄기원 씨가 본심을 맡았다.(京鄕新聞 199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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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걸(洪承杰) : 1940- , 감천면 수한리 출신, 삼천초등, 국민대 법학과 졸업, 국방부차관 비서실, 제8대 홍승만 국회의원 비서관을 거쳐, 홍승만 변호사사무실(辯護士事務室)에 근무하기 시작하여 한국합동법률사무소 사무장(事務長)으로서 변호사(辯護士) 제반 업무를 총괄 보필하였다. 서울지방 변호사사무직원회 자문위원, 연희동(延禧洞)마을금고 이사, 동원산업(株) 이사, 유창물산(裕昌物産, 株) 송무부장(訟務部長), 동일산업(주) 법무 담당을 역임하면서 종사원들의 법적인 신변 문제 등을 원활히 해결하였다. 한국합동법률사무소 사무장을 지냈다. 서울지방 변호사 사무직원회 자문위원, 제일평화(주) 상무, 운동장 평화시장(주) 이사이다. 97년 재경삼천초등동문회(在京三泉初等同門會) 회장이다. 논문으로, ''''건물 철거 판결에 의한 대체 집행 신청에 관한 문제'''', ''''판결에 의한 건물 등, 명도집행 후 불법 재입주자에 대한 명도에 관한 문제'''', ''''국민 화합과 인간 관계의 개선'''', ''''왜 법원의 항소 상고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가'''', ''''대법원에서 환송 판결이 선고되면 상고장 첨부인지액은 환급이 마땅'''', ''''12.12, 5.18사건 대법원 판결 비판'''' 등이 있다.(嶺友俱樂部 99號 1982, 醴泉新聞 1997.6.24, 醴泉文學 20號(1999) 22號(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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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만(洪承만) : 감천면 수한리 물한 출신, 국회의원을 거쳐 변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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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욱 : 1948- , 유천면 광전리 출신, 예천동부초등(12회), 대창고(大昌高) 졸업, 1966년 9월 1일 경북선(慶北線) 개통과 함께 철도청 역무원(驛務員)을 시작했다. 1987년 부역장(副驛長)으로 승진, 영주지방철도청(榮州地方鐵道廳)을 거쳐 죽령역장(竹嶺驛長), 개포역장(開浦驛長), 예천역장(醴泉驛長, 1994)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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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활 : 1955- , 유천면 광전리 출신, 본관은 남양, 현선의 아들, 유천초등, 대창중, 대창고, 영남대 영문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 졸업, 75년 예천군청에서 공직 시작, 80년 대구 서구청 근무, 84년 대구시청 인력개발과, 98년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대구 달서구청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석사 논문은, <공무원 명예퇴직제도의 운영 실태와 문제점>이다.(醴泉新聞 1999.4.1)

  홍승활("眞正한 奉仕行政 爲해 最善" : 홍승활 大邱 達西區 도원洞長) [記事] : “우리 도원동은 한 마디로 자연 속의 도심이 살아 숨쉬는 무릉도원 같은 곳입니다”로 말문을 여는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사무소 홍승활(48·유천면 출생) 동장은 동네 자랑과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도원동은 달서구 남서쪽에 위치한 전형적 주거 지역으로 택지개발사업 전에는 자연 부락으로 구성된 논농사 지역이었으나 택지개발사업과 함께 대규모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지금은 신주거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 또한 2003년 3월 1일 도원고, 대곡고가 개교함에 따라 관내에 고교 2, 중학교 2, 초등학교 4개가 있는 명실상부한 교육의 고장(洞)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3년 3월 중순 현재 9개 단지 아파트에 12,100세대 정도이며 자연 부락으로 원덕마을과 수밭마을에 660여 세대 1,350여 명의 주민이 아파트 주민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동 전체 인구도 46,000여 명에 이르고 1일 동사무소를 찾는 주민도 1천여 명에 달한다. 동 청사도 지하 1층, 지상 4층의 비교적 대규모로써 2, 3층은 경영 수익 사업 일환으로 독서실과 태권도장이 임대하고 있고 주민자치센터 운영 사업도 타 지역의 모범 모델로 벤치 마킹의 대상 기관으로 방문자가 많다고 한다. 아파트 이름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말로 가람, 미리샘, 사계절, 강산, 한실들, 별메, 산새, 나래, 아람마을 등 독특하면서 아름답다고 특징지은 홍 동장은 주민의 정서나 생활도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달서구가 자랑하는 청룡산과 월광수변공원(테마-리듬분수 : 높이 50m 폭 170m 2003년 6월 말 준공 예정)이 있어 행락 철이나 휴일, 하절기에는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대구 시민이 휴식의 공간으로 많이 찾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생산적 복지 실현과 찾아가는 행정을 추구하는 `약진하는 달서구’라는 구정에 발맞춰, “동사무소의 주인은 동네 주민이기 때문에 동장 책상 옆에 있던 응접 안락 의자도 찾아오는 민원인을 위해 민원 창구 앞에 내놓았다”는 홍 동장. 부임 일주일만에 사무실 내부를 회의나 다용도의 테이블로 교체하여 일하는 분위기와 민원인 상담실로 새롭게 바꿔 놓았다. 홍 동장은 또, “동네 주민이 보다 편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해 관내 순찰을 보다 많이 하여 주민의 불편한 곳을 찾아 고치는 진정한 봉사 행정을 펼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醴泉新聞 2003-04-11 16:56:11)

  홍승활("世界陸上大會 大邱 誘致 너무 기뻐요" : 홍승활(柳川面 出生, 書記官) 大邱世界陸上大會 誘致委員長) [記事] :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지만,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구 개최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너무 기쁜 일입니다.” 2007년 3월 27일 몸바샤에서 열린 IAAF 집행이사회에 참가한 대구 대표단 실무 책임을 맡은 홍승활(유천면 출생) 대구세계육상대회 유치지원부장(서기관)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 부장은 대구시가 축배를 들기 위해 지난 실사단 방문 때나 이번에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갔다고 한다. 대구시청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홍 부장은 김범일(하리면 출생) 시장의 의중을 미리 알고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구 유치에는 홍 부장의 철저한 준비도 밑거름이 됐다. 2011년 대회는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9일간 대구월드컵 경기장을 주 경기장으로 세계 212개국 7천여 명의 선수 임원 취재진이 참가한다. 따라서 대구시 경제에 5천여억 원의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홍 부장은 전한다. 홍승활 부장은 유천면 태생으로 대창고, 영남대 영문과, 경북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시청 인력개발과, 대구시 총무과 고과계장, 문화예술과 문화기획과장을 거쳤다. 경운대 행정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태권 취재부장/출향인 담당>(醴泉新聞 2007년 04월 05일 14:27:48)

  →예천의 자랑(1780) : 홍승활 弘報官(附 예천방문 306)(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11-17 照會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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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억선 : 예천 출신, 영남대 교육학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진량고 교사, ''''대구수필'''' 편집장이고, 대구교대 사회교육원 강사이다. 대구문인협회 회원, 대구수필문학회 회원, 경산문인협회 회원, ''''빛그림'''' 동인이다. 공저로 <바다가 부르는 날> 등이 있다.(醴泉文學 22號(2000) 23號(2001) 24號(2001) 26號(2002))



  고려시가에 끼친 원 산곡의 영향 일고찰(高麗詩歌에 끼친 元 散曲의 影響 一考察) [論文] : 예천 출신인 홍억선(嶺南大 碩士, 진량高 敎師, 大邱敎大 講師, 大邱隨筆 編輯長)의 영남대학교 교육학대학원 국어교육과 1993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51장, 영남대학교에서 1993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영남대, 한성대이다.(keri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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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오선 : 1939- , 유천면 출생, 호는 석초, 서울문리사대 국어과, 한양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시조 시인이다. 유두회 한가락모임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동백문학회, 한가락회 회원이고, 서울 산다촌문인회 회장이고, 서울예절교육연구회 강사이다. 교육감 표창, 문교부장관 표창, 녹조근정 훈장을 받았고, 교육논문 5편을 입상하였다. 논문으로, ''''고시조에 나타난 선비 정신'''' 외 교육 논문 5편 입상, 저서로, <숲속의 소리>(교육수상집)이 있고, 논문으로 ''''고시조에 나타난 선비 정신'''' 외 교육논문 5편이 있는데 입상 포상되었다 (醴泉文學 22號(2000) 24號(2001) 26號(2002) 29號(2004), 醴泉文壇 創刊號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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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완선(洪完善) : 1956- , 예천 출신, 80년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AIM ABMP 과정 이수, 83년 한국투자금융 영업, 인사, 신용분석업무 담당, 88년 동 회사채 인수, 매매 주선 업무담당, 91년 하나은행 설립추진위 사무국, 91년 동 신탁업무 총괄, 94년 동 평창동출장소 영업점장(營業店場), 95년 동 부평(富平)지점장, 96년 동 대구지점장, 98년 동 청량리지점장, 98년 동 자금부장, 99년 동 신탁부장, 2000년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상무이사(현)이다.(每日名鑑 1997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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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원화(洪元和) : 1963- , 예천 출신, 경북대 공과대 건축공학과 교수이다.(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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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일화(洪一和) : 1947- , 예천 출신, 본관은 남양, 70년 국민대 경제학과졸업, 73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무행정 졸업, 90년 미국 죠지워싱턴대 AMP과정 수료, 93년 국민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이다. 71년 제8대 국회 비서관, 80년 (株)한국코벨 상무이사, 81년 민정당 중앙위원, 83년 (사단)한국청년회의소 한국JC신문 편집인, 동 논설위원, 동 중앙회 홍보실장(弘報室長), (주)한국데칼 대표이사, 84년 (사단)한국청년회의소 제1부회장, 86년 한국스크린인쇄공업협동조합(印刷工業協同組合) 이사장, 87년 민정당 중앙위 청년분과 1분과위원장, 89년 중소기업협동조합(中小企業協同組合) 중앙회 이사 및 정책위원, 90년 민자당 중앙위 상무위원, 사회단체 한민족청년동지회 중앙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안산시지부장, 한 루마니아 친선교류협회 회장, 93년 민자당(民自黨) 중앙상무위 청년분과 위원장(靑年分科委員長), 95년 (株)고려데칼 고문, 95년 민자당 중앙상무위원회 부의장(副議長), 한국데칼 고문이사(顧問理事, 現),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99년 한나라당 부대변인, 21세기통일봉사단 단장이다. 민주정의당총재 표창,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 표창, 유기정 표창, 정부 표창, 우수중소기업인 표창, 500만불 수출의 탑, 제4회 안산상공회의소 경영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저서로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 30년사>, <한국스크린인쇄공업협동조합 5년사> 등이 있다.(每日名鑑 1996 1997 1999 200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people.chol.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한국 역대 대통령이 치적과 리더쉽에 관한 연구(韓國 歷代 大統領의 治績과 리더쉽에 關한 硏究) [論文] : 예천 출신인 홍일화(洪一和, 1947- , 美 조지워싱턴大 修了, 國民大 碩士, 韓國데칼 代表理事, 韓民族靑年同志會 會長)의 국민대학교 대학원 1993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v,171장, 서울 국민대학교에서 1993년에 발행하였다. 주제어는 한국 대통령 리더쉽 노태우 이승만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조선대, 충남대이다.(keri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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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철화(高品質 戰略 樹立해 堅實한 會社로 成長 : 홍철화 (株)에이펙建築그룹 會長) [記事] : 젊은 시절 홍철화(57) 회장에겐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아무 것도 없었다. 가정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일류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홍 회장에겐 불굴의 도전 의지와 타고난 성실성, 근명성이 있었다. 천직이란 소명 의식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오늘날 (주)에이펙 건축그룹 회장으로서 성공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홍 회장은 일찍 서울로 가서 건설회사 현장에서 일을 배웠다. 말 그대로 현장 실습과 경영 과정을 터득해 오늘날 (주)랜드피아 건설회장, (주)에이펙 건축 설계사무소 회장, (주)에이펙 건축그룹 회장이 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도회지로 나서 타고난 성실성과 고품질 전략을 바탕으로 관급 공사를 통해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왔다.‘서울시 여성프라자’‘제주도 오라관광단지 80만 평''''‘여수 소호동 금호아파트 1천8백58세대’등 굵직굵직한 공사를 연거푸 수주해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여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다. 홍 회장은, “제가 설계, 시공한 것에 하자가 발생한다면 그건 토목 건축 기술자로서 양심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건축 업자가 이런 자존심이 없다면 그 것이 무슨 건축업자에요. 회사가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업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담한 키에 인심있어 보이는 얼굴, 수 많은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부드러운 그이지만 일에서만은 예외이다. 얼마 전 직원 실수로 공사에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고도 주위에서 그대로 일을 진행하자고 했지만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다시 재작업을 지시한 일은 홍 회장의 책임감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화라고 직원들이 말한다. 이 일화로 인해 (주)에이펙 전직원들은 홍 회장으로부터 건축은 1등 품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었단다. 전문 시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해오고 있는 (주)에이펙 건축 홍철화 회장은 늘 계획을 세운다. 무슨 일이든지 돌출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회 생활을 오래 할수록 자신의 행동이나 결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더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란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진취적으로 도전하고 실무에서 미래의 도약을 위한 기반을 쌓아야한다고 원칙을 지켜왔다.‘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단결된 모습으로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에이펙 건축 설계사무소에 70여 명의 설계사와 각 지역 건설 현장의 건설, 토목, 감리 관련 전문직 기술자 출신이 타 업체에 비해 안전 인프라가 뛰어나다. 홍 회장은,“전 직원이 전문직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회사의 경영적인 부분보다는 현장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인프라가 업계의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건설업체 수에 비해 공사 물량은 한정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죠. 앞으로 특화된 경쟁력이 없는 업체는 자연도태될 것입니다.”홍철화 회장은 지보면 소화리에서 태어났다. 건국대 행정대학원, 중앙대 건설대학원, 고려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했으며 전 신한국당 건설분과위원, 운영위원 겸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고향 사랑도 남달라 예시회 모임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홍 회장은,“고품질 전략을 수립해 견실한 회사로 성장해온 (주)에이펙건축 종합 그룹을 품질 하자 제로화를 바탕으로 강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태권 취재부장, 출향인담당>(醴泉新聞 2005-03-25 13: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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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화숙(홍화숙 氏 第48回 보화賞 榮譽) [記事] : 예천군 호명면 종산1리 홍화숙(54세) 씨가 제48회 보화상의 효행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2005년 4월 22일 오전 11시 재단법인 보화원 회관(대구시 소재)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보화상은 날이 갈수록 쇠퇴되어 가는 윤리 도의를 복원하기 위해 1956년 처음 제정된 상으로 대구시와 경북도민 가운데 모범 효행과 선행자를 발굴 시상해 왔으며, 69년 재단법인 보화원을 설립해 시상의 영구화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등 우리 민족의 미풍 양속을 되찾는데 힘쓰고 있는 국내의 권위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화상을 수상하게 된 홍씨는 30년 전에 결혼, 시조부모를 모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챙기며 집안의 화목과 우애를 이끌어오는 등 평소 이웃의 많은 칭송을 받아 왔으며 넉넉하지 못한 살림과 여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농사일을 직접 하면서 힘든 내색없이 지내왔다. 1987년 남편의 시력 상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17년 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의 병 수발과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으며, 15년 전 시동생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자 어린 조카 남매를 친자식처럼 지극 정성으로 돌봐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이 밖에도 마을 부녀회장으로서 이웃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일처럼 챙기는 등 훌륭한 심성으로 참된 효행을 실천한 공이 인정되어 이 번에 수상을 하게 됐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4-21 오후 6:19:36)

  홍화숙(보화賞 孝行部門 受賞) [記事] : 호명면 종산1리 홍화숙(54) 씨가 제48회 보화상 효행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2005년 4월 22일 오전 11시 대구 보화원 회관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홍씨는 30년 전 결혼 시조부모를 모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집안의 화목과 우애를 이끌어왔다. 지난 87년 남편의 시력 상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17년 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의 병수발과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또한 15년 전 시동생이 불의의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어린 조카 남매를 돌봐 성장시키는 한편, 마을 부녀회장으로서 이웃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자신의 일처럼 챙기는 등 훌륭한 심성으로 참된 효행을 실천한 공이 인정되어 이 번에 수상을 하게 됐다. 보화상은 1956년 처음 제정된 상으로 대구시와 경북도민 가운데 모범 효행과 선행자를 발굴 시상해 왔으며, 지난 69년 재단법인 보화원을 설립해 시상의 영구화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醴泉新聞 2005-04-29 17: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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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명당서실, 각종 서예대전에서 입상...축하합니다.



  명당서실(''''明堂書室 院生 各種 書藝大展서 頭角'''') [記事] :

  신록의 계절 5월 들어 예천읍 명당서실(원장 한중섭) 원생들이 도내에서 열린 각종 서예대전에서 대거 우수한 성적을 거둬 예향 예천의 이름을 드높였다.

  2009년 5월 27일 발표된 제2회 대한민국 낙동예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장용무 씨가 예서체 ‘서거정 선생시’로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류정희·김정섭·송고흠·김종련 씨가 특선, 권오성·김태석 씨가 각각 입선을 차지했다.

  시상식은 7월 12일 대구시민회관 2층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며, 수상작은 동 회관에서 7월 6일부터 12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장용무 씨는 “노년을 묵향에 취해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후학들을 위해 모범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성심으로 지도해준 명당 한중섭 선생님과 작은 솜씨를 높게 평가해준 심사위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2009년 5월 22일 발표된 제5회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에서는 장용무·정의걸 씨가 각각 입선을 차지했으며, 입선작은 7월 4일부터 9일까지 5일간 안동시민회관에 전시된다.

  한편 동년 5월 23일 단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27회 이황퇴계선생 추념휘호대회에서는 이도식 씨가 특선, 류정희·권오하·정대교·장용무·김종련·김창일 씨가 각각 입선했다.

  또한 명당 한중섭 선생이 함께 지도하고 있는 용문금당연묵회 회원들이 동년 5월 21일 발표한 제9회 대한민국 영일만 서예대전에서 조장규 씨가 특선, 권두섭·정해선·정해일·김용길 씨가 각각 입선했다.

  제자들의 선전에 한중섭 선생은 “서예는 심신을 바로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수양의 한 방편”이라며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정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6월 04일 16: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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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44



  예천전통서예체험관("醴泉을 書藝의 搖籃으로 만들겠습니다.") [記事] :

  한국 서예계의 거봉 초정(艸丁) 권창륜(65ㆍ한국서예학술원장) 선생은 2009년 6월 10일 개관예정인 전통서예체험관을 중심으로 한국서예의 체계를 재정립하고, 맥을 잇는 서예의 메카로 만들 것임을 천명했다.

  "우리나라 서예는 7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국학바람으로 대학에도 서예과가 생기는 등 발전해 왔지만, 중국이나 일본 서예와 다른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은 서체를 정립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이 같은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전통서예체험관 건립에 나섰고, 예천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다고 밝혔다.

  예천전통서예체험관은 우리나라 첫 서예 박물관이자 체험관이다. 한국 서예를 계승 발전하고 관광자원화를 위해 군이 초정이 제공한 5,019㎡의 부지에 모두 30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864㎡ 규모로 지었다.

  땅값과 조경 등 전체 공사비의 20% 가량을 초정 선생이 사비로 부담했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었지만 2층과 지붕은 목조 한식으로 지어 실용성과 전통성을 두루 갖췄다.

  유물전시실과 이론강의실, 실기체험실, 수장고를 모두 갖춰 작품감상과 서예체험 등 서예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운영은 권씨의 호를 딴 사단법인 초정서예연구원이 맡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마추어 체험과 엘리트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복안이다.

  원장을 맡게 된 초정은 "서예 하면 딱딱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갖는데, 일반인들이 무엇보다 재미있게 배우도록 하겠다"며 "인근의 금당실문화마을과 영주 소수서원, 선비촌,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등과 연계한 유교문화 관광코스로도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대형 휘호 퍼포먼스를 열거나 붓으로 낙서하기, 비석 탁본 등 서예와 친해질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인근 들판에 금석문과 시문 등을 새긴 조형물을 세워 산책로로 조성하고 각종 전시회를 열어 서예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시대에 맞게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서예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후학 양성을 위해 서예 이론과 재료, 표구, 서예사 등을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학술세미나도 여는 한편 국제교류전도 열 계획이다.

  "서예인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토론하고 이론과 실기로 무장하는, 그야말로 서예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꾸미는 것이 여생의 최고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학 서예 전공 학생들을 위탁교육하거나 장기적으로 서예대학원을 설립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서예의 근본도 모르고 추사체 등 선현들의 글씨를 베끼기만 해서 제대로 된 서체가 나오지 않는다"며 서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성품에 맞는 전통서법을 공부하며 학문수양에 힘써 인격을 쌓아야 좋은 서법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고전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화한 현대사회에 맞게 전통서예를 계승ㆍ발전시키는 서예의 현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초정은 조부로부터 서예와 한학을 배웠고,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여초 김응현과 일중 김충현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

  66년 국전에 응모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계에 뛰어들어 77년 제26회 국전에서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아 초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 등 오체에 두루 능하며 서울과 예천을 오가며 작품활동과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인터넷韓國日報 2009/06/05 0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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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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