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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32) : 김해기-김해민-김해석-김해일(1)(附 예천군, 전국 최초 순환형매립장 조성...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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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기("科學 營農 先導해 나가" : 虎鳴面 푸른農園 김해기 代表) [記事] : 잡식성인 왕우렁이 생태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과 농가 새소득원 사업으로 보급해 나가기 위한 연구와 노력에 힘쓰고 있는 선도 농업인이 있다. 1998년부터 왕우렁이 사육을 시작한 호명면 산합2리 푸른농원 대표 김해기(45) 씨는 온도 조절 설비, 관수 시설 등을 갖춘 700평 규모의 연동 하우스 내에서 왕우렁이를 400여 평 규모로 사육해 연간 2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우렁이, 오리 등의 먹이사슬 체계를 농업에 적용해 활용하는 이 환경 농법에 김씨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뚜렷한 농가 소득 사업이 적고 타 지역에서 소득을 올리는 사업일지라도 현지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적 여건 등을 감안해 지역적 특성과 환경 농법과의 접목을 구상하던 중 접하게 된 것. 김씨는 이 왕우렁이를 사용한 친환경 농법 보급을 위해 우렁이 증식과 분양 보급 사업을 하고 있다. 높은 당도와 아삭아삭한 맛으로 정평이 나 있는 호명참외 재배 육성에도 힘쓰는 등 지역 소득 특화 작목 개발 노력에 앞장 서는 과학 영농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토종우렁이와 왕우렁이로 대별되는 우렁이는 식용 요리로 많이 사용되는데 토종우렁이와 수입 우렁이가 질기고 흙 냄새가 나는 반면 왕우렁이는 맛과 영양면에서 우수해 현재 대부분 식용으로는 왕우렁이가 사용되고 있다. 김씨는 또 영농 지식을 갖추기 위해 농협중앙회와 농업기술센터, 전문회사 프로그램 등 각종 교육과정을 이수해 기술력을 배양하고 재배 기술을 참외의 특성 향상과 재배 기술 보급, 경영 분석 등 영농 현장에 접목해 과학 영농을 실천함으므로써 농산물의 품질 향상과 경영 효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1997년도에는 영농 부문에서 예천군 새군민상 수상, 1999년도 농협중앙회의 `이 달의 새농민' 선정, 예천군농업기술센터 농가 소득 증대 시범 농가 선정 등 선도 농가로서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醴泉新聞 2002-04-25 11:52:50)
김해기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호명면 김해기 자랑스런 도민상 수상/ 4년전, 2007년 11월 15일/ 호명면 김해기 자랑스런 도민상 수상 호명면 산합2리 김해기(51) 푸른농원 대표가 지난 6일 오후 4시 도청 강당에서 2007년 자랑스러운 도민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소백산작목반 조직운영 및 영농정보 제공.../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해기 : 호명 김해기 씨 2007년 자랑스런 경북인 선정/ 4년전, 2007년 11월 6일/ 친환경농법(우렁이) 생산 농가보급 호명 김해기 씨 2007년 자랑스런 경북인 선정 경상북도는 지난 1997년부터 친환경농법(우렁이) 생산 보급과 친환경 참외생산 등으로 지역 농업발전에 기여해 온 김해기 씨.../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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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민 : 1975- , 예천읍 청복2리 출신, 종섭의 5녀, 예천남부초등, 예천여중, 안동 성희여고, 안동과학대 전산학과, 숭의여대 문창과 재학 중인 200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희망약국 앞 무허가 종묘사'로 당선되었다.(醴泉新聞 2002.2.7, www.loveject.com 2003)
김해민(은륜(小說*김해민*醴泉邑 出生)) : 예천신문/ 2010.04.01/ ...평화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글=김해민(예천읍 청복2리 출생*부: 김종섭, 모: 하옥남) 그림=권소현 안개의 꼬리는 마을의 경계까지 삼실처럼 흩어져 있었다. 마을을 싸고도는 물길 위로 철로가 얹어져 있었다....(daum 2010)
김해민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김해민 씨 신춘한라문예 소설 당선/ 3년전, 2008년 1월 11일/ 김해민 씨 신춘한라문예 소설 당선 지난 200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았던 예천읍 청복2리 김종섭(69) 하옥남(60) 씨의 5녀 김해민(33) 씨가 이번에는 2008년도 제주 한라일보.../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해민 : 예천신문cafe/ 은륜(소설*김해민*예천읍 출생)/ 작년, 2010년 4월 1일/ [평화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글=김해민(예천읍 청복2리 출생*부: 김종섭, 모: 하옥남) 그림=권소현 안개의 꼬리는 마을의 경계까지 삼실처럼 흩어져 있었다. 마을을 싸고도는 물길 위로 철로가 .../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김해민 : 희망약국 앞 무허가 종묘사(시)/ 작년, 2010년 4월 1일/ 희망약국 앞 무허가 종묘사 김해민(2002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예천읍 청복2리 출생) 삼거리 `희망약국' 앞 난전이 벌어진다. 보따리에선 배추씨 무씨 아욱씨 아주까리씨 삼씨, 잎담배에 당귀까지.../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김해민(平和新聞 新春文藝 小說部門 當選) [記事] : 2010년 2월 7일 발표된 2010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예천읍 청복2리 태생의 김해민(35·서울시 강동구) 씨가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김씨는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200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된 바 있는 시인이자 소설가. 이번 당선작 <은륜(銀輪)>은 50년대 한 시골마을의 바보스런 청년 봉운이가 이웃의 초등학생 수익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야기, 심사위원은 “전설 같기도 한 이야기를 시처럼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으며, 조건 없는 인간에의 여운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예천읍 청복2리 김종섭(71) 하옥남(62) 씨의 5녀인 김씨는 예천남부초등, 예천여중, 안동 성희여고, 고려대 국문과,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대학 강의(강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醴泉新聞 20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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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석(金海碩) : 1947- , 예천 출신, 신성소재 상무이사이다.(朝鮮日報 DB 2003)
김해석 : 대창80년사:중고병설시대(18) 송대사진모임-제2권목차/ 작성 장병창/ 3달전, 2011년 1월 16일 (일)/ ...(고 4), 부회장 황중태(고 5), 박의원(고 6), 김주현(고 7), 장원수(고 8), 감사 변우홍(고 4), 김해석(고 10), 이사 안승해(고 1), 변병채(고 1), 강홍원(고 2), 박경근(고 2), 윤상식(고 3), 김태우.../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김해석 : 대창90년사:송대인,김해석-김현동-김호현-김홍화-김휘경-김희태/ 작성 장병창/ 2011.10.18 | Daum 카페/ 김해석(金海碩) : 1947- , 예천 출신, 신성소재 상무이사이다.(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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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일(金海一) : 1640(인조 18)-1691(숙종 17), 개포면 경진리 검바우 출신,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계(檀溪), 본관은 예안, 유학(幼學) 단(端)의 2자, 남일(南一)ㆍ태일(兌一, 司諫)의 동생이다. 일찍이 경학(經學)에 힘써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60년(현종 1) 21세에 식년 진사시에 3등 62위로 합격, 1663년(현종 4) 24세에 식년 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 1666)로부터 사록(司錄)에 옮긴 후 전적(典籍), 직강(直講), 병조 정랑 겸 춘추관 기주관(兵曹正郞兼春秋館起注官)을 거쳐 지평(持平, 1672)에 임명되어 정언(正言)이 되었다. 6.7년 동안 장령(掌令)에 6차, 집의(執義), 부교리(副校理)에 각 1차로 임명되었고, 또 그 사이에 사서(司書), 문학(文學), 사예(司藝), 사성(司成) 및 통례원(通禮院), 봉상시 정(奉常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남원 부사(南原府使, 1673)로 나갔다가 인조(仁祖)의 변무(1678)의 일로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연경(燕京)에 가서 그 일을 밝히고 귀국하여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되어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임명되고 좌승지(左承旨)에 올랐다. 늙으신 부모봉양을 위해서 외직(外職)을 청하여 청풍 부사(淸風府使)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키 전에 성주 목사(星州牧使)로 임명되었다가 다시 병조 참의(兵曹參議), 형조 참의(刑曹 參議)를 거쳐 좌부승지(左副承旨), 좌승지(左承旨)에 오르고, 진향부사(進香副使)로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여주 목사(驪州牧使)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치 않았고, 경주 부윤(慶州府尹)에 임명되었는데, 치적이 많아 그곳에 마애비(磨崖碑)를 남겼다. 이 비에서 송덕명(頌德銘)하기를, "民遭大侵 天惠我侯 轉死爲生 惟天與侯"이라고 하였다. 덕성이 온화하고 문장과 행의가 뛰어나 경향의 존경을 받았다. 또 산수를 좋아하여 누대(樓臺) 천석에 음영(吟詠)이 많고, 문집(文集)이 있다. 숙종이 그의 부음(訃音)을 받고 제문(祭文)에서 이르기를, "宜家孝友 報國忠貞 風稜栢府 裨益世程 才優專對 再涉燕行 擢置喉司 弼預聰明"이라고 하였다. 묘는 제천 공전산 간좌(堤川 公田山艮坐)에 있고, 화산사(華山祠)에 제향(祭享)되었다.(司馬榜目, 醴泉郡邑誌 1770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族譜)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座目 ./ 왕 재위년도 숙종 1년/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 / 좌의정(左議政) 정치화(鄭致和) / 우의정(右議政) 김수항(金壽恒)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지화(鄭知和) / 당상(堂上) /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 이상진(李尙眞) 예겸(例兼) / 행호조판서(行戶曹判書) 권대운(權大運) / 행공조판서(行工曹判書) 이정영(李正英) 쇄색(刷色) / 행의정부우참찬(行議政府右參贊) 민유중(閔維重) 유사(有司) / 이조판서(吏曹判書) 홍처량(洪處亮) 예겸(例兼)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유혁연(柳赫然) 토포색(討捕色) / 예조판서(禮曹判書) 오정위(吳挺緯) /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신여철(申汝哲) / 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 남구만(南九萬) 유사(有司) /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김석주(金錫冑) 유사(有司) / 낭청(郞廳) / 병조정랑(兵曹正郞) 신경윤(愼景尹) /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조가석(趙嘉錫) / 부사직(副司直) 김해일(金海一) / 부사직(副司直) 최상익(崔商翼) / 부사정(副司正) 서문진(徐文縉) / 부사과(副司果) 이류(李)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권해(權楷) / 부사정(副司正) 유천삼(柳天三) / 부사과(副司果) 김광휘(金匡輝) / 부사정(副司正) 홍시주(洪時疇) / 선전관(宣傳官) 황기(黃錡) / 선전관(宣傳官) 김몽량(金夢良)(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文郞廳望金海一有?代宗簿正宋昌 ./ 왕 재위년도 숙종 1년 / 월일 숙종 1년(1675) 4월 10일 / 문낭청 망 : 탈이 있는 김해일(金海一)의 후임, 종부시정 송창(宋昌).(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京畿災實摘奸郞廳抄出別單 ./ 왕 재위년도 숙종 1년 / 월일 숙종 1년(1675) 8월 29일 / 경기의 재실(災實) 적간 낭청 10원 : 이구(李球)․김해일(金海一)․이일정(李日井)․안여석(安如石)․유천삼(柳天三)․목림형(睦林馨)․이최만(李最晩)․유덕삼(柳德三)․조창한(趙昌漢)․한세필(韓世弼).(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座目 ./ 왕 재위년도 숙종 2년 /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치화(鄭致和) /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정지화(鄭知和) / 좌의정(左議政) 권대운(權大運) / 우의정(右議政) 허목(許穆) / 당상(堂上) / 행예조판서(行禮曹判書) 민희(閔熙) / 공조판서(工曹判書) 유혁연(柳赫然) 토포색(討捕色) / 호조판서(戶曹判書) 오정위(吳挺緯) /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오시수(吳始壽) 유사(有司) 쇄환색(刷還色) / 행사헌부대사헌(行司憲府大司憲) 민점(閔點) 유사(有司) / 병조판서(兵曹判書) 김석주(金錫冑) 유사(有司) / 이조판서(吏曹判書) 윤휴(尹?) / 형조판서(刑曹判書) 목래선(睦來善) / 병조참판(兵曹參判) 신여철(申汝哲) / 호조참판(戶曹參判) 심재(沈梓) / 낭청(郞廳) /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김환(金奐) /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 권환(權?) / 병조정랑(兵曹正郞) 이홍적(李弘迪) / 부사직(副司直) 김해일(金海一) /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 정양(鄭敭) / 부사과(副司果) 노세정(盧世挺) /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 장우영(張羽瀛) / 선전관(宣傳官) 원덕휘(元德徽) / 선전관(宣傳官) 우서규(禹瑞圭) /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 이홍적(李弘勣) / 부사용(副司勇) 신유(申?) / 부사용(副司勇) 이빈(李?)(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座目 ./ 왕 재위년도 숙종 3년 /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치화(鄭致和) /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정지화(鄭知和) / 좌의정(左議政) 권대운(權大運) / 우의정(右議政) 허목(許穆) / 당상(堂上) / 행의정부우찬성(行議政府右贊成) 민희(閔熙) /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 김석주(金錫冑) 유사(有司) / 행공조판서(行工曹判書) 유혁연(柳赫然) 토포색(討捕色) / 행부호군(行副護軍) 오정위(吳挺緯) / 호조판서(戶曹判書) 오시수(吳始壽)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민점(閔點) 유사(有司) / 이조판서(吏曹判書) 목래선(睦來善) /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지익(李之翼) 예겸(例兼)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여철(申汝哲)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석(鄭晳) / 행부호군(行副護軍) 권대재(權大載) / 낭청(郞廳) /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이후(李煦) /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권환(權?) / 병조정랑(兵曹正郞) 심극(沈極) / 부사직(副司直) 김해일(金海一)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윤취상(尹就商)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우서규(禹瑞圭) / 부사과(副司果) 오도홍(吳道弘) / 선전관(宣傳官) 이빈(李?) / 선전관(宣傳官) 민취로(閔就魯) /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 이홍적(李弘勣) / 부사용(副司勇) 오시항(吳始恒) / 부사용(副司勇) 허공(許?)(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文郞廳望沈?遷轉代 ./ 왕 재위년도 숙종 3년 / 월일 숙종 3년(1677) 12월 19일 / 문낭청 망 : 승진되어 간 심발(沈?)의 후임, 전 헌납 김해일(金海一).(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座目 ./ 왕 재위년도 숙종 4년 / 좌목(座目) /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지화(鄭知和) / 좌의정(左議政) 권대운(權大運) / 우의정(右議政) 허목(許穆) / 당상(堂上) /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민희(閔熙) / 행부사직(行副司直) 유혁연(柳赫然) 토포색(討捕色) /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 김석주(金錫冑) 유사(有司) / 행호조판서(行戶曹判書) 오시수(吳始壽) / 행공조판서(行工曹判書) 민점(閔點) /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홍우원(洪宇遠) 예겸(例兼) /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오정위(吳挺緯) /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 목래선(睦來善) / 형조판서(刑曹判書) 이원정(李元禎) 유사(有司) / 한흥군(韓興君) 이여발(李汝發) / 이조참의(吏曹參議) 유명천(柳命天) 유사(有司) / 낭청(郞廳) /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이봉징(李鳳徵) / 병조정랑(兵曹正郞) 엄즙(嚴緝) / 부사직(副司直) 김해일(金海一) / 부사과(副司果) 이후항(李后沆)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민취로(閔就魯) / 부사과(副司果) 장우영(長羽瀛) / 부사과(副司果) 허공(許?) / 부사과(副司果) 오도홍(吳道弘) / 선전관(宣傳官) 이기하(李基夏) / 선전관(宣傳官) 조세웅(趙世雄) / 부사용(副司勇) 이성(李筬) / 부사용(副司勇) 이시격(李時格)(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文郞廳望 ./ 왕 재위년도 숙종 4년 / 월일 숙종 4년(1678) 윤3월 10일 / 문낭청 망 : 대간이 된 김해일(金海一)의 후임, 이후항(李后沆).(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靈巖私奴殺人罪當償命, 五家統事目 ./ 왕 재위년도 숙종 4년 / 월일 숙종 4년(1678) 7월 4일 / 이달 초3일의 대신․비국당상을 인견하여 입시할 때에 영의정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신 등이 전라도 영암의 사노 맛생(唜生)의 살인한 죄가 상명(償命)에 해당한다고 비국을 통하여 복계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 후 승지 이담명(李聃命)의 계사로 인하여 '다시 묘당으로 하여금 상의하여 여쭈어 처리하게 하라'는 하교가 계셨습니다. 당초 조정에서 오가통사목(五家統事目) 가운데 「통패에 실리지 않은 자는 죽여도 살인에 대한 죽음이 없다」는 문구가 있으니 지금 이 맛생(唜生)의 상명은 실제 사목을 분부한 본의에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이담명(李聃命)의 주장은 사실 법을 집행하자는 말이나 신 등의 소견은 피살된 세남(世男)이 비록 통패에 들어 있지 않았으나 이미 갑오․기유 양 식년(式年)의 호적에 기록되어 있고 그 후 거사(居士)로서 일정한 주거가 없었으니 원거주민의 호적 탈루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또 맛생(唜生)이란 자는 세남이 통패에 들어 있지 않음을 알고 그 품은 원한으로 인하여 그 세 조카를 거느리고 공공연히 백주에 타살하였으니 그 정상이나 범행의 죄상이 모두 매우 흉악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상명에 관한 형률(刑律)을 시행치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 등의 뜻은 이미 당초의 복계에서 모두 아뢴 바 있고 입시한 비국 여러 신하의 뜻도 신 등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사로 판단하는 일은 체통이 매우 무겁습니다. 여러 신하에게 물어보시고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좌부승지 유하익(兪夏益)이 아뢰기를 "이담명(李聃命)이 계사(啓辭)를 지을 때에 신도 같이 입직(入直)하였는데 신의 뜻은 이담명(李聃命)과 차이가 있습니다. 들은 즉 세남이란 자는 당초 양 식년에 호적에 들었던 사람으로서 거사(居士)가 된 뒤에 중[僧]과 같은 생활을 하였으니 비록 통패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거주민의 호적 탈루의 경우와는 거리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신은 비국의 회계를 그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였으며, 헌납 김해일(金海一)은 아뢰기를 "당초 국가에서 사목을 정하여 사방에 반포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어찌 흔들려 고칠 수 있겠습니까?" 하였고, 부교리 이식(李湜)은 아뢰기를 "법이란 한 번 정해지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만약 당초의 사목이 타당성을 잃었다면 마땅히 변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상명(償命)에 관한 형률로 시행해서는 옳지 않습니다." 하니, 영의정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당초 사목을 심리, 제정할 때에「소송하여도 처리하지 않고, 죽여도 살인에 대한 죽음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제정이 된 뒤에는 진실로 흔들려 고쳐서는 안되나 조정에서는 호적에서 탈루한 자를 법에 의하여 처단하지 못하고 죄가 정배(定配)로 그쳤으니 어찌 사사로이 서로 죽인 죄에만 사목을 융통성 없이 지켜서 변통치 않겠습니까? 신의 뜻은 당초의 사목 가운데 「죽여도 살인에 대한 죽음이 없다(死無殺死)」는 네 글자에 표를 붙여 삭제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맛생이 사람을 죽인 문제를 앞서의 회계에 의하여 시행하고, 사목 가운데 '사무살사(死無殺死)' 네 글자를 고쳐 표를 붙이는 것이 옳다." 하였다.(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咸鏡監司薦 ./ 왕 재위년도 숙종 16년 / 월일 숙종 16년(1690) 4월 29일 / 함경감사 천 / 행병조판서 민암 : 이서우(李瑞雨)․오시대(吳始大)․이봉징(李鳳徵). / 행예조판서 이관징 : 이항(李沆)․박상형 (朴相馨)․박진규(朴鎭圭). / 의정부우참찬 이우정 : 오시대․이서우․이항. / 행사헌부대사헌 민우도 : 오시대․이서우․이봉징. / 이조판서 유명천 : 이봉징․오시대․이서우. / 호조판서 오시복 : 이서우․이봉징․심단(沈檀). / 형조판서 정유악 : 이서우․이봉징․심단. / 행홍문관대제학 이담명 / 동지중추부사 이집 : 이봉징․오시대․심단. / 병조참판 권유 : 오시대․이서우․박진규. / 공조참판 유명현 : 오시대․이봉징․심단. / 호조참판 이의징 : 이봉징․이서우․엄즙(嚴緝). / 성균관대사성 이봉징 : 이서우․엄즙․김해일(金海一) / 비망 : ○ 이서우․심단․오시대.(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9월 26일(무술) 1번째 기사/ 강백년․이항․김해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강백년(姜栢年)을 대사헌으로, 이항(李沆)을 주서로, 김해일(金海一)․김두익(金斗翼)․민암(閔?)을 겸 춘추로 삼았다. 고사에 6조․사간원․종부시․승문원의 당하관 1명이 춘추를 겸하고, 춘방(春坊)999) 은 2명이 나누어 겸하고, 옥당의 제학 이하와 사헌부의 집의 이하 및 승지는 으레 겸하고, 외방에는 8도의 도사가 으레 겸하며 수령 중에서도 택하여 겸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듣고 보는 것을 모두 기록하여 사관(史館)에 보내게 한 다음 전최(殿最)에 참고토록 하였는데, 그 의도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직임의 폐지가 풍습이 되어 날짜와 날씨만 기록하여 성적을 매기는 데에 응할 뿐이며 성적을 매기는 일을 맡은 자도 책망하지 않으니, 식자들이 탄식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7책 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註 999]춘방(春坊) : 세자 시강원. ☞(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10월 26일(정묘) 1번째 기사/ 신석번․김해일․심유․조사석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신석번(申碩蕃)을 장령으로, 김해일(金海一)․심유(沈濡)를 정언으로, 조사석(趙師錫)을 사서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7책 2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11월 2일(계유) 4번째 기사/ 헌부가 김해일과 심유의 출사를 아뢰니 따르다/ 헌부가 처치하여 김해일과 심유를 출사시킬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7책 28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현종실록 21권/ 현종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6월 17일(을묘) 1번째 기사/ 김해일․홍만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해일(金海一)을 장령으로, 홍만종(洪萬鍾)을 정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7책 4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현종개수실록 27권/ 현종 14년(1673 계축 / 청 강희(康熙) 12년) 6월 19일(정사) 1번째 기사/ 김해일을 장령으로, 홍만종을 정언으로 삼다/ 김해일을 장령으로, 홍만종을 정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14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숙종실록 3권/ 숙종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3월 22일(경진) 1번째 기사/ 오시복․김해일․박세당․조지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시복(吳始復)을 이조 좌랑(吏曹左郞)으로, 김해일(金海一)을 헌납(獻納)으로, 박세당(朴世堂)을 응교(應敎)로, 조지겸(趙持謙)을 검열(檢閱)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25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숙종실록 4권/ 숙종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윤5월 26일(계축) 1번째 기사/ 권대재를 전라도 관찰사로, 윤휴를 대사헌으로, 김해일을 장령에 제수하다/ 권대재(權大載)를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윤휴(尹?)를 대사헌(大司憲)으로, 김해일(金海一)을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권대재는 권대운(權大運)의 사촌 아우인데, 성품이 간사하고 독하였다. 일찍이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되었을 적에 사람들이 이르기를 ꡐ두 왜놈[兩倭]이 서로 만났으니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다.ꡑ 하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젊어서 동학소(東學疏)에 참여하여 선현(先賢)들을 추하게 헐뜯었으므로, 과거에 급제한 뒤에도 오랫동안 청로(淸路)에 〈진출할 길이〉 막혔었다. 이 때문에 서인(西人)을 원망함이 특히 심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참혹하고 각박한 논의가 권대재에게서 많이 나왔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28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숙종실록 4권/ 숙종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6월 2일(기미) 2번째 기사/ 장령 김해일이 능주 목사 이세익을 파직하여 서용치 말 것을 청하므로 윤허하다/ 장령(掌令) 김해일(金海一)이 아뢰기를, ꡒ고(故) 유신(儒臣) 정개청(鄭介淸)은 학문에 돈독하고 행실에 힘썼던 사람이었는데,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꾸며낸 참혹한 화(禍)를 만나서 귀양갔던 곳에서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이를 호남(湖南) 사람들이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향을 지내던 것을 고(故) 판서(判書) 송준길(宋浚吉)이 헛된 말을 날조하여 죄안(罪案)에다 억지로 더하여서 〈사당을〉 헐어버리는 화(禍)를 만들어냈고, 능주 목사(綾州牧使) 이세익(李世翊)이 일찍이 함평 현감(咸平縣監)으로 있었을 적에 〈 송준길의〉 뜻을 받아서 그 위판(位版)을 불태움으로써 당시의 의논에 잘 보이려 하였습니다. 〈 이세익이〉 당(黨)에 붙어서 현인(賢人)을 업신여긴 죄는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파직(罷職)하고 서용(敍用)하지 말게 하기를 청합니다.ꡓ하니, 이를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286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숙종실록 4권/ 숙종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7월 11일(정유) 3번째 기사/ 홍주삼․이덕주․김해일․이항을 관직에 제수하다/ 홍주삼(洪柱三)을 좌부승지(左副承旨)로, 이덕주(李德周)와 김해일(金海一)을 장령(掌令)으로, 이항(李沆)을 지평(持平)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29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해일 [記事] : 숙종실록 4권/ 숙종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7월 15일(신축) 3번째 기사/ 김휘․이옥․김해일 등이 김수항을 파직시킬 것을 청하자 중도 부처토록 하다/ 대사헌(大司憲) 김휘(金徽), 사간(司諫) 이옥(李沃), 장령(掌令) 김해일(金海一), 지평(持平) 이항(李沆), 정언(正言) 권환(權?)․이서우(李瑞雨) 등이 합계(合啓)하기를, ꡒ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수항(金壽恒)이 올린 한 차자는 말이 매우 위험하여 신자(臣子)로서는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차마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 아님이 없습니다. 아! 대순(大舜)이 사흉(四兇)904) 을 목베인 것이 어찌 제요(帝堯)의 칙철(則哲)에 손상되며, 원우(元祐)의 왕안석(王安石)을 물리친 것은 실로 신종(神宗)의 유지(遺旨)를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기필코 군부(君父)를 침범(侵犯)하였다는 데로 돌리기 위하여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혼약(昏弱)을 끌어다가 선조(先朝)에 비의(比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적(抉摘)한 말과 변환(變幻)한 말의 뜻은 마치 여러 신하들이 윤상(倫常)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는 일들을 인도하였는데도 전하께서 우용(優容)하시고 통척(痛斥)을 가하지 않는 것같이 하여 그 누(累)가 성궁(聖躬)에 미치게 하고자 하였고, 전하의 효성(孝誠)이 더욱 돈독하신 데도 불측(不測)한 말을 지어내어 성조(聖朝)에 가함으로써 인심을 의란(疑亂)하게 하였습니다. 옛부터 골육(骨肉)을 이간시켜 남의 가국(家國)에 화(禍)를 입게 한 일들이 혹은 환시(宦寺)와 첩부(妾婦)들의 사이에서 나왔습니다만, 김수항 은 세가(世家)의 자손으로서 대신의 반열(班列)에 있으면서 차마 이렇게 간특(奸慝)하고 회사(回邪)한 수단을 써서 조정을 무함(誣陷)하고 군부(君父)를 협지(脅持)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위해 보복하는 소지로 만들려 하였으니,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김수항의 파직을 청합니다.ꡓ하니, 답하기를, ꡒ김수항의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사예(四裔)905) 에 병출(?出)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는 같지 않으니, 중도 부처(中道付處)906) 토록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8책 295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 *인사-임면(任免)/ [註 904]사흉(四兇) : 요(堯)대의 네 사람의 악인(惡人).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을 일컬음. ☞ / [註 905]사예(四裔) : 나라의 사방의 끝. ☞ / [註 906]중도 부처(中道付處) : 형벌의 한 가지로서, 죄인을 일정한 장소에 보내어 거주지를 한정하여서 귀양살이 시키는 것. 부처(付處).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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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전국 최초 순환형매립장 조성...축하합니다.
예천군순환형매립장(醴泉郡, 全國 最初 循環形埋立場 造成했다!) [記事] : 예천군에서는 혐오시설로 손꼽히는 쓰레기매립장을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위생적인 시설을 갖춘 순환형매립장으로 탈바꿈하면서 '환경시설은 기피시설'이라는 주민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2014년 1월 24일 오후 3시 예천읍 청복리 매립장 현지에서 이한성 국회의원, 이현준 예천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청복리 지역 주민, 읍면 265개리 이장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환형매립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번에 조성된 '예천군순환형매립장'은 사업비 158억원을 들여 시설면적 1만9천520㎡, 매립공간 12만5천㎥를 확보하여 향후 13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매립장이며 위생적, 친환경적으로 운영하여 앞으로 환경시설에 대한 주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향후 행정추진에도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에서는 그 동안 사용해 오던 청복리 쓰레기매립장이 용량 초과로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으나 신규 매립장 조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따라 해결 방안으로 전국 최초로 위생적인 순환형매립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2010년도에 착공해 4년 만에 완공하게 됐다. 순환형매립장'이란 기존의 매립장에 묻힌 쓰레기를 땅을 파서 매립공간을 확보하고 묻혀있던 쓰레기 중 선별된 가연성쓰레기는 전문업체에 위탁하여 소각처리하며 남은 토사는 향후 복토재로 재사용하는 형태의 새로운 쓰레기매립장이다. 이현준 군수는 "이번 순환형매립장 조성 시 어려움도 있었으나 관과 민인 뜻을 모아 잘 해결했듯이 향후 군에서도 철저하게 관리하여 매립장에 대한 군민 인식이 바뀌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예천군과 예천군의회에서는 이번에 준공된 '순환형매립장' 조성을 거울삼아 미래형 대규모 생활쓰레기 처리장 조성에 군민의 의견을 모으고 합리적으로 추진해 군민의 갈등이 아닌 화합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지혜를 모으고 있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4년01월24일 08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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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