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2013. 10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향산 이만도)
작성자감천면 @ 2013.10.04 11:00:18

13. 10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

 

■ 공훈개요

 ◦성    명 :향산(響山)이만도(李晩燾), 안동

 ◦생몰년도 :1842.1.28 〜 1910.10.10

 ◦훈    격 :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주요 공적

 ∙1896년 1월 23일 예안에서 선성의진(의병부대)을 결성하여 의병

 대장으로 추대

 ∙1905년 박제순-하야시 억지합의(을사조약)에 상소를 올려 5적의  

 목을 베라고 주장

  ∙1910년 국권피탈 후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그 해 9월 17일 

 부터 단식을 시작해 10월 10일 순국

 

■ 공적개요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는 안동시 도산면 하계마을 사람으로, 퇴계

의 11세손으로 1842년에 태어났다. 그는 1866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

고, 사간원 정언ㆍ홍문관 수찬ㆍ사헌부 집의ㆍ성균관 사성 등 청직

淸職과 양산군수를 지냈다.

 

1882년 조미수호조약이 맺어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나가

지 않고 고향에 백동서당柏洞書堂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 그가 항일투쟁 대열에 앞장선 때는 1895년 12월이다.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그는 1896년 1월 23일(음 1895.12.9) 예안

에서 선성의진(의병부대)을 결성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9일 만에 안동의진이 패했다는 소식에 병사들이 흩어지자, 이만도는

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그 뒤를 집안 후손인 이중린ㆍ이인화ㆍ이

중언ㆍ이빈호ㆍ이중엽ㆍ이찬화 등이 맡아 나갔다.

 

1905년 박제순-하야시 억지합의(을사조약)가 있었다는 소문이 들

리자, 그는 다시 일어났다. 그는 상소를 올려 을사 5적의 목을 베라고

주장하였다.

 

1910년 8월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는 목숨을 버리

기로 작정하였다. 9월 17일(음 8.14) 음식을 끊기 시작했다. 이 소식

을 전해들은 가족과 집안 친척, 제자들이 황급하게 쫓아와 말렸지만

결코 막을 수가 없었다. 일제 앞잡이들이 찾아와 설득하자 기력이 다

하던 순간에도 큰소리로 꾸짖어 물리쳤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 ‘순국’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자

신을 ‘선생’이라고 쓰지도 못하게 막았다. 만약 남들이 제문에 그러

한 말을 넣었다면 반드시 지우고 읽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자신은 그

런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요즘 부르는 호칭 가지고

싸움하는 인물들에게는 커다란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10월 10일(음 9.8)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단식 24일째 되던 날, 장렬하

게 순국한 것이다.

 

이만도의 순국은 후손들에게 등대와 같았다. 거대한 규범이요, 지

켜 갈 길이다. 동생 만규와 아들 중업, 며느리 김락, 두 손자 동흠ㆍ

종흠, 손녀사위 김용환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모두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3대에 걸친 장엄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펼쳐진 것이

다.

 

우리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을 기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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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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