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2013. 11월 경상북도 독립운동가(벽산 김도현 선생)
작성자개포면 @ 2013.10.31 16:59:03

13. 11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

 

□ 공훈개요

 ◦성    명 : 벽산(碧山) 김도현(金道), 영양

 ◦생몰년도 : 1852. 〜 1914.

 ◦훈    격 :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주요 공적

  ∙1896년 2월 17일 청량산에 들어가 의병활동 시작

  ∙1896년 3월 태봉전투에 참여

  ∙1902년부터 두 차례나 ‘거의통문(擧義通文)’을 작성하여 거의를 촉구

  ∙1906년 광무황제의 밀칙을 받고 다시 거병 준비

  ∙1909년 사립영흥학교 설립, 교육활동에 전념

  ∙1914년 부친상을 복결(服闋)하고 영해 대진 산수암에서 유서와 영결

   (永訣詩)을 남기고 도해순국(蹈海殉國)

 

 □ 공적개요

김도현(金道鉉, 1852~1914)은 경북 영양 출신이며, 호는 벽산(碧

山)이다. 1895년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영양지역 곳곳을 돌며 의

병항쟁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호응이 없자, 그는 1896년 2월 17일

청량산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시작하였고, 3월 18일에는 예안의 선성

의진(宣城義陣)과 합세하였다. 선성의진의 중군장을 맡은 김도현은

1896년 3월 태봉전투에 참여하였다. 이 전투는 서상렬이 이끄는 호

좌의진과 안동 주변의 6개 의진, 모두 7개 의병부대가 일본군 병참부

대가 있던 상주 태봉에서 벌인 전투이다.

 

태봉전투에서 패한 김도현은 영양으로 돌아와 검각산성(劍角山)에

주둔하였다. 이 산성은 1894년 무렵 사재를 털어, 자신의 집 뒷산 검

각산에 쌓은 성이다.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김도현이 이끄는 의병부

대는 1896년 10월 15일까지 경북 동북부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

는 을미의병 가운데 가장 최장기간에 걸친 항전이었다.

 

◦  김도현은 전기의병 해산 뒤에도 1902년과 1904년 두 차례나 통

문을 작성하여 거병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어 1905년 을사늑약 소

식이 있자 서울로 올라가 상소를 올리는 한편 각국 공관에 포고문을

보내 역적의 처단과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였다. 그는 상소로 뜻

을 이루지 못하자, 1906년 1월 21일 5읍도집강 때 활동하던 포수들

을 규합하여 다시 거의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체포되

어 대구감옥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06년 가을 광무황제의 밀칙을 받은 김도현은 각 지역에 격문을

발송하고 다시 거병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1909년에는 사립영흥학교(私立英興學

校)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에 힘쓰기도 했다.

 

의병항쟁과 교육활동으로 항일투쟁을 이어가던 김도현은 대한제국

이 멸망하자 자진을 결심하였다. 그가 순국자정을 결정한데는 스승

이만도(李晩燾)의 영향이 컸다. 김도현은 1896년 선성의진의 중군

장으로 활약하면서 이만도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스승의 단식투쟁

을 지켜보던 김도현은 함께 자결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스승 이만도

는 이를 만류하였다. 김도현의 부친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잠시 미루었던 김도현은 1914년 부친이 운명하자, 자정순

국의 의지를 결행하였다. 그는 1914년 11월 7일 동짓날, 집을 떠나

영해의 대진으로 향하였다. 절명시를 읊은 그는  관어대 앞 바다 속

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선택한 도해순국(蹈海殉國)

은 일제가 지배하는 이 땅에 자신의 육신을 맡길 수 없다는 강한 의

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순국 투쟁은 밖으로는 일제 강점의 부당성

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었고, 안으로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킴과 동시

민족적 각성을 불러일으켜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김도현의 항쟁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다음 몇 가지 의의를 가진다.

첫째,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국권회복에 나섰다는

점, 둘째, 그가 이끌던 의병이 한말 전기의병 가운데서 가장 오랫동안

항쟁하였다는 점, 셋째, 중기의병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1902년부터

두 차례나 ‘거의통문(擧義通文)’을 작성하여 거의를 촉구했다는 점,

넷째, 망국(亡國)을 맞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도해(蹈海)라는 방

법으로 자정 순국하였다는 점이다. 나라에서는 이러한 뜻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붙임 : 공훈자료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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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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