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6년 10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권만(權潫, 1571~1635)
본관: 안동(安東) / 자(字): 자심(子深) / 호(號): 야일(野逸)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참여하고 류성룡의 문하에서 수학한 조선 중기의 학자.
|권만의 인물 개요
권만은 예천 출신의 학자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소모장*으로 추대되어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다. 류성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과 덕행으로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증광시 생원 2등에 합격하였으며, 향현사(鄕賢祠)와 오천서당(浯川書堂) 건립을 주도하였다.
|권만의 가문과 성장
고려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죽림(竹林) 권산해(權山海)이다. 6~7세부터 글짓기에 능해 집안의 기대를 모았으며, 1580년(선조 13) 열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예법에 따라 장례와 제사를 정성껏 치렀다. 20세에 혼인한 뒤 예천의 신당리(新塘里)로 옮겨 살았으며, 집 앞에 연못을 파고 ‘임연(臨羨)’이라 이름 지었다.
|권만의 과거 급제 기록
[생원] 인조仁祖 2년1624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2등二等 23위
|권만의 행적과 저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소모장으로 추대되어 곽재우에게 나아가 화왕산성을 수비하였다. 류성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나 서미동 정사(精舍)에 머물 때 곁에서 모시며 학문을 닦았다. 광해군 때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집 뒷산에 야일대(野逸臺)를 짓고 당시 명망 높은 선비들과 교류하였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성균관에 있을 때 이기발(李起浡)로부터 후덕하고 고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성리학 서적과 『심경(心經)』, 『주례(周禮)』 등을 깊이 공부하였으며, 향현사와 오천서당 건립을 주도하였다. 문집으로는 1912년에 간행된 『야일유고(野逸遺稿)』가 전한다.
* 의병소모장(義兵召募將): 의병과 물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하는 장수.
*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과거급제자」 (https://kdp.aks.ac.kr/people).
권만, 『야일유고(野逸遺稿)』, 부록, 「행장」.
작성자: 학예연구원 이한별 / 검수자: 학예연구사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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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