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2025년 예천박물관 10월 이달의 인물]
전명룡(全命龍)
용궁, 1606~1667
[문과] 인조(仁祖) 5년(162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생원] 인조(仁祖) 2년(1624)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3등(三等)
자(字): 백유(伯兪) 호(號): 영서(𤃡西) 본관: 옥천(沃川) 거주지: 용궁(龍宮) 전력: 생원(生員) 관직: 부사(府使)
부: 전대승(全大承) 제: 전명익(全命益), 전명직(全命稷)
전명룡의 출생
전명룡의 본관은 옥천, 자는 백유, 호는 영서이다. 아버지는 전대승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부호군(副護軍)* 박운(朴雲)의 딸이다. 유년 시절에 작은아버지 전중승(全仲承)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전명룡의 관직 생활
전명룡은 1623년(인조 1) 증광문과에 급제해 생원이 되었다. 이후 162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630년 성균관학정 겸 봉상시봉사*에 임명되었다. 2년 후 성균관박사 겸 양현고직장* 및 성균관전적·형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1633년 예조좌랑으로 춘추관에 재직하면서 소신 있는 포부를 펼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사직을 청원했으나, 흥덕현감에 임명되었다.
1640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지내다가 1643년 경성판관으로 부임했다. 이후 1647년 평양서윤*, 1659년 풍기군수·영암군수 등을 역임했다. 만년(晩年)에 대사헌·대사간 등에 부름을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명룡이 남긴 『영서집(穎西集)』
전명룡의 저서로는 『영서집』이 있다. 4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권1과 권2에는 모두 400수가 넘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차운(次韻)한 시와 만사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시가 수록된 편으로, 저자의 시작(詩作)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권3에는 3편의 전문(箋文)*과 영남의 유생들을 대신하여 올린 소(疏)를 비롯해 7편의 편지와 서문(序文)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4는 부록으로, 유사(遺事)와 행장(行狀)을 비롯해 묘갈명, 축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호군: 조선시대 5위(五衛)의 종4품의 관직.
*봉상시봉사: 조선시대 국가의 제사 및 시호를 의론하여 정하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의 관원.
*양현고직장: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의 관원.
*평양서윤: 조선시대 평양부(平壤府)의 종4품 관직.
*전문: 임금이나 왕후, 태자에게 올리던 글. 중국 한(漢)나라 때 이후 신년, 탄일(誕日) 등 기념일에 맞추어 축하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대체로 사륙문(四六文)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이후에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영서집(穎西集)』
『천계7년정묘식년문과방목(天啓七年丁卯式年文科榜目)』
유교넷(https://www.ugyo.net/)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e뮤지엄(https://www.emuseum.go.kr/main)
작성자: 학예연구원 최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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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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