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물 및 유물소개

제목이달의 인물 ‘김곤’(2025.03.)
작성자예천박물관 @ 2025.03.25 09:16:22

[2025년 3월 예천박물관 이달의 인물]

김곤 金錕 1596~?

 

[문과] 인조(仁祖) 26년(164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자: 자진(子珍) 호: 검암(劍巖) 본관: 예안(禮安)

출신지: 예천(醴泉) 전력: 유학(幼學) 관직: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부: 김득선(金得善) 조부: 김윤안(金胤安) 증조부: 김사희(金士熙)

외조부: 권방(權昉) 처부: 유심(柳O)

형: 김원(金鈨) 제: 김오(金鋘) 제: 김자(金鎡) 제: 김단(金鍴)

자(子): 김태일(金兌一)

 

병자호란 때 성균관의 위판을 지킨 유생, 김곤

김곤은 개포면 경진리 출신이며 자는 자진(子珍), 호는 검암(劍岩)이다. 1635년(인조 13)에 생원이 되었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이때 성균관 유생들이 피난을 가는 중에 김곤은 6촌 동생 김강 등과 함께 성균관 다섯 성인의 위판을 모시고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개원사(開元寺)에 봉안하였다.

 

김곤의 관직 생활

1648년(인조 26)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현감·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사헌부감찰에 올랐다. 그러나 80세가 넘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1656년 성균관전적으로 다시 불림을 받았으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벼슬에 나아가기를 원했기에 한성으로 가서 공조와 병조의 좌랑이 되었다.

얼마 후 다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섬김에 정성을 다했다. 이를 본 이웃은 김곤의 효성과 우애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그 후 80세에 수직壽職*으로 정3품 통정대부에 오르고, 1677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당상관의 자격을 받았으나 이듬해 타계하였다.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 왕실에 필요한 의복이나 식품 등을 관장한 관서의 문서와 부적(付籍)을 주관하던 관직.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성균관 도적(圖籍)의 수장(收藏)과 출납‧관리의 일을 하던 관직.

*수직(壽職): 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벼슬아치와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벼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중추부에 둔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

 

참고문헌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노주집(蘆洲集)』 卷5, 附錄, [행장(行狀)](金履萬)

『숭정8년을해10월초4일증광사마방목(崇禎八年乙亥十月初四日增廣司馬榜目)』

유교넷(https://www.ugyo.net/)

 

작성자: 학예연구원 최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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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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