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용문 금당실마을 투어
작성자관리자 @ 2019.08.19 17:25:29

안녕하세요, 이번 지원사업으로 근무하게된 청년지도자 임용호입니다. 

지난 8월16일 좋은 기회로 마을 기사 취재로 오신 한국일보 기자님과 함께 용문마을 문화관광해설자님께서 용문 금당실마을투어를 시켜주시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눠주셨습니다. 


예천금당실(醴泉金堂室)마을이 조선시대 말기에 등장한 <정감록>에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홍경래의 이름과 더불어 <정감록>은 19세기 농문 봉기의 바이블처럼 사용되었다. 

아래 사진 보시면 십승지를 'KOREAN EDEN'로 번역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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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마을에서 주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운게 있다면 바로 돌담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왔던 돌담을 보존하기위해 새마을 공사로 길을 넓이기 위해, 진행당시 전문가들을 불러내 돌하나하나를 그대로 움겨서 쌓아놨다고한다. 

마을 전체가 대부분이 돌담으로 돌려쌓았고 총길이가 7500미터가 된다고한다.


현재 금당실마을에서 보존된 한옥과 기타 주택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우천재>


<반송재>-주택, 승마석


<김대기가옥>


<월당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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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금곡서당>

학봉 김성일의 동생 김복일(, 1541~1591)의 주도로 1564년부터 1570년 사이에 예천() 덕진동()에 설립한 서당이다.
당시 예천군에는 동서에 이미 2개소의 기존 서당이 있었으나, 기존 서당은 한쪽 지역에 치우쳐 있어 사적인 기관으로 한정되어 교육대상이 극히 제한된 실정이었다 한다. 이에 금곡서당은 그 설립목적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그 류()를 가리지 않을 것〔〕”에서 찾고 있다.

(정순우, 「18세기 서당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85, 14~18쪽.)


<용문사>

《김룡사본말사지 》에 따르면, 신라시대 870년(경문왕 10)에 두운()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두운이 이 산의 동구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영접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용문사라 하였고, 절을 짓기 시작하였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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