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7월23일 오전11시
면사무소 앞 450년된 느티나무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있어 카메라를 들고 가보았습니다. 부산에서 근무하는 교사 40여명이 관광하러 왔네요.

그럼 금당실마을에 관한 박희식문화해설사님으로부터
유래, 역사, 의미를 들어볼까요??

금당실(金塘室) 마을
금당실 마을은 정감록에 의하면 내우외환이 없는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의 사람이 살기좋은 마을로 전국의 십승지 중의 한곳이라고 정감록에 기록이 되어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름있는 선비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마을안 곳곳에 고인돌무덤이 수십기가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이곳에는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이 됨니다.
기록상으로는 약 500년전 文獻(甘泉文氏)이 정착하여 그의 후손3대(孝儉 叔孫 抑磬)를 이어 살면서 문억경 (文抑磬 :司勇郊尉) 代에서 그는 아들이 없고 따님만 두분을 두었는데 출가를 한후 사위되는 함양박씨의 박종린과 원주변씨의 변응녕 두분이 이마을에 들어와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그사위들의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전하며, 아직까지 외손들이 450여년 동안 묘소를 수호 하며 시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후손들은 조선중기 이후 많은 인재를 배출 하였고 유학을 널리 숭상하여 이지역만의 독특한 선비문화를 형성하면서 대를이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 집성촌마을 입니다.
금당실마을은 오미봉을 주산으로 하여 마을의 동서남북 사방에서 마을의 안위를 지키는 수호신을 보존하고 있으며 이 수호신에게 정월 대보름에 동신제를 올리는등 지금도 전통을 이어서 내려오는 문화가 남아 있으며 많은 고택과 초가집들이 조화를 이루어 조선시대의 전통마을의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읍니다.
마을 뒷산인 오미봉은 명당혈로 입수(入首) 하는 현무정(玄武頂)이라고 하며, 문필봉이라 글 잘하는 선비와 글 잘쓰는 명필이 많이 난다고 하였다.
오미봉(五美峯)에서 본 금당실 금당팔경
雅尾半月 白馬嘶風
柳田暮煙 金塘風景
仙洞歸雲 福泉甘飮
龍寺曉鍾
竹林淸風
특히 금당실 마을에는 미로와 같은 돌담길이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감을 더해주고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게하고 있는데요,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누구라도 꾸불꾸불한 돌담길로 인하여 가야할 길을 ##52287;지 못하여 해매이게 되므로 미로찾기 놀이를 하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예날 어느 나그네가 이마을에 구경을 왔다가 되돌아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해매다가 마침 길가던 어느 노인의 안내를 받아 겨우 외부로 되돌아 갈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돌담이 만들어진 경위를 고찰하여 보면 옛날 마을에 사람들이 집을짓고 살게 되면서 집주변 마당에는 수없이 많은 돌들이 나오니까 이를 처리하기 위하여 집 가장자리에 돌을 모아 두었는데 이를 보기좋게 처리할수 없을까 궁리끝에 우리의 선조님들은 저마다 집주위에 돌담을 만들게 되니까 자연적으로 미로같은 돌담길이 되었다고 하지요.
마을 담장을 연장하면 24km 가 넘는다고 하는데 막돌담장 ,토석담장, 기와담장 등등 낮게 쌓은 돌담이 정겨우며, 나무지게 넓이의 지갯길은 지나간 6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여 볼수 있는곳이다.
금당실 하면 전국에서 풍수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난 명당터 이며 정감록에서도 남사고가 꼽은 십승지지 중의 한곡으로 지적한 곳이다.
醴泉金堂洞北, 此地雖淺露, 兵戈不入累代安享, 然王駕臨之則否
(예천의 금당동 북쪽이니 이땅은 비록 지세가 깊지 못하여 드러나 있으나 전쟁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 누대에 걸쳐 편안함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수레가 임하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전문적인 풍수가의 입장에서 금당실은 명당으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갗추었으며, 한국인들의 은둔적 이상향을 대표하는 십대길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이다.
금당실마을을 “반서울”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반(半)서울” 이란 서울의 절반 정도 된다는 뜻인데 마을의 번화함을 말하는 것인지, 마을의 위세나 권세를 의미 하는지 아니면 또다른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수는 없지만 “반서울”이란 말의 모호성이나 다의성(多意性)이 오히려 금당실의 위상을 더욱 높여 주는것도 사실이다.
반서울 이라 부르게 연유는 ##52399;째 조선을 건국한 태조왕 깨서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려고 할때 십승지인 금당실에 사람(풍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