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지난 주말 동창회를 하고 귀경했다. 매번 고향을 다녀오면 마음이 들떠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에게만 있는 징후일까! 오늘은 언젠가 언론에 투고했던 원고를 찾아 보았다. 새로 무언가 쓰기 보다 그것을 옮겨 본다.
내 고향은 금당실
고향!
누구에게나
고향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한
고향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있는 고향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죽을 때까지 애틋한 그 무엇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아련한 기억만을 남겨 주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수몰지구에 고향을 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
찾아가고 싶어도
이제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는 가슴속에만 있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어릴적의 꿈은 간직하면서 지낼 수는 있겠다.
그런데
개발이라는 진통 속에서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떨까?
고향이란 말이 어쩌면 참으로 역겹게 들려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가 어떤 모임에서
고향이 이야기의 주제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한바탕 저마다의 고향자랑이 치러진 다음에,
아무생각이 없는 듯 물끄러미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한 지인에게
당연하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본적이 있다.
되돌아 온 대답은 너무나도 맥없이,
아니 허탈하기까지 하였다.
“고향요?
종로에 있는 모은행의 모차장 자리에 저의 고향집이 있었습니다.”
고향이 아니라 고향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분은 고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에게 고향집은 있었어도,
그 애틋하고 아련한 고향은
그 분에게서 없어진지 오래인 사람이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팔자에 역마살이 끼어서인지는 몰라도
청년 시절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참 많이도 돌아 다녔다.
지나간 길을 실타래로 엮어 본다면
그 실은 적어도 지구를 몇 바퀴는
돌릴 수 있을 게다.
나라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외국말도 다양하게 경험하였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나라마다 음식도 달랐다.
속된 말로 입도 설고 귀도 선
그런 나라들을 많이도 돌아 다녔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지금은
그 시절의 행적들이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추억들은 모두 다
나에게는 귀중한 추억들이다.
어쩌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추억들이
나에게 그렇게 귀중한 추억일지라도
고향의 기억과 맞바꿀 수는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과 싸우다 낙향한 고귀한 선비가 살았던 내고향을
그런 추억들과 비교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나라를 잃어버려
외국인이 주인이었던 시절에
고향이름에 금(金)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외국인에 의해 파헤쳐진 적도 있었다.
그런 외국인에 의해 야기되었던 사건 때문에
고향의 그 아름다운 솔둥지의 소나무를 베어 배상금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솔둥지의 아름다움에 누(累)가된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키는 충효의 고장으로 우뚝설 수 있었다.
소나무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청렴과 우직함이 아니었던가?
이제 돌아보니
내 삶은 삼분되어
초년에는 고향에서 꿈을 꾸고,
청년기에는 외국을 다니면서 듣고 보면서 배우고,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나의 길을 준비하게 해 준 나의 고향이 참으로 고맙다.
앞집에는 용이가 살고
뒷집에는 숙이가 살던
그 고향이 그렇게도 그립다.
삶의 현장을 돌아보며 새로운 결정을 위해 뒤안길을 찾을 때는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항상 떠올리는 것이 고향이다.
그런 고향에 이제 경상북도 도청이 들어선단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그렇지만
개발의 논리 때문에
고향의 그 애틋하고 아련한 정서가 사라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혜로운 고향어르신들은
충분히 그렇게 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도청이 들어설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십승지(十勝地)중의 으뜸인 금당실이 있다.
금당(金堂)!
아무리 누추한 절간을 가더라도 부처님이 모셔진 곳은 특별나다.
그렇게도 더러운 진흑탕물 속에서 홀로 아름답게 피는 연꽃위에,
그것도 부족하여
그 연꽃위에 금방석을 놓아 부처님을 모신다.
금당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게
부처님을 모시는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랑스런 내고향은
바로 그런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