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선몽대에서 초정선생님의 붓과 함께한 춤의 향연
작성자관리자 @ 2013.06.14 08:23:00

 仙夢臺에서 草丁 선생님의 붓과 함께한 춤의 饗宴

 

이승훈

醴泉虎鳴白松,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 仙夢臺가 있다. 이 역시 이름이 호기심을 끈다, 이 선몽대에서 오늘 잔치가 있다고 해서 나그네의 자격으로 이곳을 찾았다, 예천읍내에서 남쪽으로 달리다가 호명면사무에서 서쪽으로 가며는 백송리를 만나게 된다. 대략 60호 전후의 집들이 동남향으로 고즈넉이 자리 잡은 백송리는 평화로운 한국전통의 시골마을이다. 특히 이 마을에서 현 국회의원이라는 걸쭉한 인물을 배출하였으니 이 고장의 정기를 보여주기나 하듯 위엄이 더해 보였다. 여기서 선몽대로 가기 위해 마을 앞을 가로질러 동북쪽으로 향하니 마치 어느 요새에 들어가는 냥 양쪽에 나지막한 동산이 호법신처럼 나란히 지키고 있었다. 잠깐 왔다고 생각되었는데 눈앞에는 별천지가 펼쳐 있었다. 시야는 확 트였다. 눈앞에 펼쳐진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봉화의 乃城리를 지나면서 乃城川이란 이름을 얻어 이곳 백송리를 지나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강의 폭은 내가 어림짐작으로 백사장까지 합하여 200는 족히 넘어 보이고 나지막한 산과 산 사이를 흐르고 있어 강둑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강의 위용을 알만도 한데 의 명칭도 못 받고 으로 홀대를 받는 것 같아서 뭔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방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나지막한 푸른 산과, 높디높은 푸른 하늘과, 도도히 흐르는 푸른 강물과, 지조를 과시나 하듯 우뚝서있는 낙락장송의 푸른 송림이 있을 뿐 세속의 속가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俗氣하나 없는 신선의 세계 같으니 여기가 마치 무릉도원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송림 사이에 세워진 仙臺洞天이라는 비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洞天神仙이나 天仙이 사는 곳이다. 많은 신선들을 배출한 중국에는 36洞天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속리산 동편, 상주군 화북면 용유동에서 道藏山 심원사로 가는 길가에 개운조사가 그곳을 떠나면서 바위에다 맨손으로 洞天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곳이 있어서 나도 그곳을 찾아 초서체로 쓰여 진 洞天을 보고 그분의 도력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나의 느낌으로는 그곳이 洞天이라는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고 있는 동천을 상징적으로 새긴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여기의 洞天은 주위 환경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듯이 仙臺洞天. 즉 신선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럴진대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500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송림 숲의 정기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헤엄치듯 그 옆을 지나니 山河好大라는 비석이 있고 조금 더 지나니 遇巖先生遺蹟碑가 등장 한다. 바로 仙夢臺의 주인이다. 전면의 遇巖先生遺蹟碑 7자는 서예계의 대가이고 서예가들의 師表이신 一中 金忠顯 선생님이 隸書體로 쓰신 것인데 이 역시 보물 중에도 귀중한 보물이라 나는 이 글씨를 보고 또 보고 오래 동안 글씨에 매료되어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문에는 솔바람 향기롭고 맑은 냇물 千古에 한결같이 韻馨을 함께하니 이곳은 이름 하여 仙夢臺이다. 白松洞天의 저 巍然屛巖은 선몽대 洞主 遇巖先生?咳가 깃든 곳이요.....하략.로 시작된다. 우암선생의 閱道이고 遇巖이다. 退陶 李滉선생이 從祖父이다. 退溪선생은 從孫을 위하여 仙夢臺라고 하시고 손수 현판 글씨와 한수를 써 주셨다고 한다. 나는 우암 선생 후손의 배려로 선몽대 내실에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내실은 3칸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양쪽에 방을 그리고 중앙에는 손님을 접대하는 현관의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야에 들어오는 퇴계선생이 써 주셨다는 仙夢臺 현판과 마주쳤다. 우람하게 굵은 楷行 書體로 쓰여 진 이 현판에 퇴계선생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 옆에는 현판과 함께 써준 漢詩가 있으니 그 시를 음미해 보자.

 

寄題仙夢臺/선몽대란 제목으로 지어 부친다.

松老高臺揷翠虛/白沙靑壁畵難如/吾今夜夜?仙夢/莫恨前時?賞疎.

소나무는 늙었는데 는 높은 곳에 지어서 푸른 하늘에 꽃인 듯 하고 / 강변에 흰 모래와 푸른 절벽은 그림으로 그리기보다 어려운 것 같구나 / 나는 지금 밤마다 신선에 기대는 꿈을 꾸고 있으니 / 전날에 충분히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

 

그리고 그 옆에는 주인인 遇巖 선생이 종조할아버지인 퇴계선생의 시에 次韻(한시에서 다른 사람이 지은시를 운자를 따라서 시를 지음)하여 시를 지은 현판과 그 전후좌우에는 藥圃鄭琢, 西厓柳成龍, 鶴峰金誠一, 漢陰李德馨, 丁士優(丁茶山先祖) 淸陰金尙憲, 中原崔鎭邦, 龍城?李宜翼, 丁載裕 등이 퇴계선생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를 현판에다 음각하여 걸어 놓았다.(지면상 시 내용은 미게재) 이 현판들의 진본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앞의 창문을 열고 그림같이 펼쳐 진 仙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