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지리산을 찾아서
이승훈
오늘은 明堂선생님의 門下生들이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어제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던 비는 멈추기는 하였지만 먹구름은 그대로이고 밤비가 새벽에는 눈으로 변해 상부댐이 있는 산 정상은 하얗게 덮여 있었다. 淸明節에 반하는 이변이다.
오늘의 일정은 지리산의 남쪽줄기를 따라 봄을 滿喫하는 것이었는데 기상이변에 조금은 당황했으나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침 7시 예천을 떠난 버스는 남쪽의 나라로 달렸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대구의 팔공산 등 높은 산 정상에는 모두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니 이번의 기상이변의 위세를 알만하다. 버스는 남해 고속도로에서 진교IC를 빠져 나오더니 한참을 더 달려서 내 시야에 출렁이는 바다가 들어오고 이어 남해대교와 마주쳤다. 남해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버스는 바다위에 세워진 남해대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남해대교는 길이가 660m에 높이가80m의 아름다운 懸垂橋이다. 1973년 개통되었으니 40년이 지난 셈이다. 우리는 대교 아래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있는 횟집에서 점심이 약속되어 있었다. 남해대교를 올려다보면서 맛있는 횟감과 함께 마음의 점을 찍은 우리는 곧장 충렬사로 향했다.
‘남해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작은 언덕 위 산등성의 협소한 자리에 세워져 있어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조금은 왜소해 보였다. 충렬사에 있는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는데 이 비석은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이순신 장군을 흠모했는데 여기도 찾아 기념식수를 하여 그 나무가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또한 제실 강당 그리고 충무공의 가묘 등이 있었다.
노량은 이순신장군이 노량대첩의 마지막 전투를 치르면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기고 아마도 남해대교 아래 이곳 바다 어디쯤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은 곳이다. 바닷가에는 거북선도 띄어놓고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는데 거북선 안에는 당시의 모습들을 재현해 놓았다.
이제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이 다음 목적지이다. 남해대교를 다시 건너 하동읍에서 다시지리산 품으로 정상을 향해 1시간 30분을 달려 해발 850m지점인 삼성궁에 도착했다.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성전으로 우리 겨레의 뿌리인 한배임(桓因), 한배웅()桓雄, 한배검(檀君)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여기서 하늘에 제 지내고 배달민족 고유의 정통경전이라 할 수 있는 天符經, 三一神誥, 參佺戒經 등 경전과 무예 등을 연마하는 수련학교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궁은 우리민족의 고유의 도맥의 복원하고 5천년을 넘게 이어온 선교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곳이며 선교는 고운 최치원에 의해 잘 알려 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것을 일컬어 풍류라고 한다. 이교(선교)를 창설한 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갖추어져 있다. 실로 이에 유불도 삼교를 그 안에 머금고 있어 생명체를 접하며 바람직스럽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도에 가까워질 수는 있을지라도 도를 얻어낸다고는 보지 않는다. 도는 학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내공수련으로 내 몸을 純陽體로 만들어 무너지지 않는 不壞의 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내공수련에 관한 어떤 저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宗祖인 崔致遠도 12살에 중국으로 유학 18년간 종남산에서 鐘離權, 呂同賓에게 수련하여 신선의 경지에 오르고 귀국했지만 불행하게도 수련방법의 저술은 남기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찾아지는 기회가 있다면 수련생들과 道談도 나누면서 그들의 수련의 면면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주어진 시간이 있어서 바쁘게 길을 따라 구경하느라 주마간산 격이 될 수밖에 없는데 특징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다 돌만을 가지고 돌의 예술을 엮어내는, 돌탑과 돌담의 백화점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잘 경영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서둘러 구경을 마치고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학동과 삼신봉(1284m)이 바로 위에 있지만 그냥 지나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1915m)은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 섬진강에 와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 하여 頭流山이라고도 한다. 예부터 두류산은 靈嶽으로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재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평전, 영신대를 거쳐 반야봉, 노고단, 왕시루봉까지 1500m가 넘는 15개여의 준봉들이 장쾌한 지리산 주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三神峰이다. 지리산에서는 북쪽의 금대암에서, 남쪽에서는 삼신봉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이 두곳에서 모두 조망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지금도 그 광경을 상상하면 설레일 정도이다. 삼신봉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해 바다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삼신봉을 격을 높이기 위해 독립해서 삼신산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노래가사에서 나오는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 메뇨” 하는 구절의 산이 바로 이삼신산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초를 케러 삼척동자를 서해 건너의 지리산인 삼신산에 보냈다는 전설도 있다.
천황봉과 노고단의 중간지점인 영신대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와 삼신봉을 만들고 다시 동서로 맥을 이어 신선대, 삼성봉, 삼선봉, 미륵봉, 시리봉을 잇는 주위 사십리의 청학동을 作局하였다. 이 청학동을 신라 말 최치원선생과 도선국사 등 역대의 선사들이 동방제일의 名地로 꼽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청학동에 관한 안내현판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청학동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 선경이라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이 천하 명승지로 일컫는 곳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청학동을 이상향으로서 천하 만인을 제도하여 지상 선경을 건설할 철학이 비장되어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곳에 1950년대부터 儒佛仙合一 更定儒道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본 갱정유도는 姜大成 道祖에 의하여 創道된 도로서 儒彿仙三道合一之理儒道를 更定하여 一心을 교화시키는 곳이다...하략”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일정에 따라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이 남으로 가지를 치고 뻗어 내려와서 남부능선을 따라 성제봉을 만들고 그 아래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섬진강이 가로막는 들녘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을 찾았다.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土地’의 배경이 된 이곳에는 소설 속 최참판댁의 집이 한옥 14동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영남의 만석지기 부자의 면모를 잘 보여 주었고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은 토지 세트장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특히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내려다보면 악양의 들녘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사리 문학관도 있는데 여기에는 박경리의 토지에 관한 것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나 시간은 우리에게 그것을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서둘러 화개장터로 향했다.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변에는 벚꽃과 배꽃 등이 활짝 웃고 있는가 하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녹차 밭도 잘 다듬어 있었다.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옛날과 같으나 장날은 없어지고 매일 장이 선다고 하는데 그래서 예전의 장 같지 않다고 한다. 난전의 봄나물이나 지역의 특산물인 녹차 매실제품과 각종 약으로 쓰여 지는 겨우살이 등 약재 들이 주류를 이루고 가수 조영남의 노래비, 장터를 조망할 수 있는 2층 정자 까지 새로 지어져 있다. 장터의 식당들도 더 화려해 졌다. 여유가 있다면 장터의 선술집에서 ‘화개장터 막걸리’라도 한잔 들이키면 좋으련만 시간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가 길에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雙磎寺가 있다. 쌍계사 위쪽으로 40분정도 올라가면 불일암이 나오고 100m쯤 더 가면 그 유명한 불일폭포가 앞을 가로막는다. 길이 60m 폭 4m의 거대한 2단 폭포는 지리산의 제일가는 명물이다.
고운 최치원이 청학을 타고 내렸다는 하학대의 바위도 있다. 최치원은 여기서 청학을 타고 청학동을 오고 가고 했다는 것이다.
청학은 용과 함께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청학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 모습이고 몸은 학의 모습이라고 한다. 신선들만이 접할 수 있는 신성한 동물이다.
이불일폭포의 내력을 자료를 통해서 인용해 본다.
“이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靑鶴峰과 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은 폭포이다. 고려 熙宗(재위 1204~1211년)때 보조국사 知訥(1158~1210년)이 폭포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라고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佛日瀑布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佛日庵”이라 불렀다.”
이 불일암에서 약 5시간 정도 걸리면 삼신봉에 이른다. 몇 년 전 나는 쌍계사 인근 민박집에서 1박하고 이 길을 따라 삼신봉까지 등정하고 청학동까지 일주해본 경험이 있다. 고운이 청학을 타고 오가던 길을 나는 걸어서 다닌 것이다.
妙香山人 西山大師의 우리나라 四大 名山論을 음미해보자.
金剛秀而不壯 : 금강산은 빼어났으되 장엄하지 않고.
地異壯而不秀 : 지리산은 장엄하되 빼어나지 않고.
九月不秀不壯 : 구월산은 빼어나지도 장엄하지도 않고.
妙香亦秀亦壯 : 묘향산은 그러나 빼어나고 장엄하도다.
우리는 하동의 명물인 제첩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물론 귀가길 버스 안에서는 이동 나이트클럽으로 변신 노래와 막춤의 향연이 펼쳐지고.... 12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訪智異山
李昇薰
微風淸明好時節 : 청명 절기에
南國樂春行靑鶴 : 남쪽나라 봄을 즐기려고 청학동을 찾았네.
夜雨晨雪頂蓋白 : 밤비가 새벽엔 눈이 되어 산 정상을 하얗게 덮었지만
山野重靑花滿作 : 산과 들에는 푸르름을 더하고 벗 꽃은 활짝 피었네.
2013, 4, 7,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