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봄맞이(迎春)
작성자관리자 @ 2013.03.25 17:16:11

 

봄 맞이 (迎春)


이 승훈


 춘분을 지난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봄소식은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웃지역 강원도에서는 10미리가 넘는 눈 폭탄에 대설주의보까지 발령되었는가 하면 우리의 삶터인 경북 북부지역에도 밤에는 영하권의 기후를 보여주고 있으니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이 그냥 생겨 난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자연의 순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 오미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는 매화가 막 숨통을 트이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이기 위해서 미소를 짖고 있는가 하면 개나리는 가지마다 노오란 싹을 토해내고 있고 여기저기 야산과 들녘에서는 나물케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것을 보면서 봄이 깊어가는 것을 그나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미정에 올라 저 멀리 상부댐을 바라보면서 그 쪽의 봄소식도 궁금했습니다.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고 했지만 산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봄의 채취를 직접 느끼기 위해 “金塘緣墨會”에서는 봄맞이 길을 나섰습니다.


 때는 3월 하순의 일요일, 날씨도 맑았습니다. 9시 30분 연묵회 서실에서 모여 각자의 짐을 자기의 배낭에 챙기고 목적지 상부댐을 가기위해서 1차 경유지 선동을 향해 여정의 길에 올랐습니다. 仙洞川을 따라 올라 가다기 당산나무아래에서 우리는 1차로 전을 벌렸습니다. 모두들 땅바닥에 앉아서 준비해온 돼지머리고기에 명당선생님이가지고 온 洋酒가 등장하자 연묵회 창립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모두들 좋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양주에 취해 봄의 향기에 취해 또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선동마을에서 밭일을 하는 지인 부부를 만나 2차로 전을 벌렸습니다. 부부는 우리에게 오랜지를 안주로 내주면서 집에 가서 차를 대접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청룡사 뒷산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입니다. 오래전 야산에 일궜던 경작지를 벗어나자 길은 없었습니다. 길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걸어야만 했습니다. 다행이도 산을 관리하는 분들이 분홍색 리본을 걸어놓아 우리에겐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 별 어려움 없이 갖바위까지 가는데 성공하였고 또 전을 벌렸습니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선동마을과 금당실은 한 폭의 동양화였습니다. 갖바위 위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다시 올라 산 정상의 능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시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땅바닥에 모여 앉아 땀 흘리고 난 뒤의 오찬을 즐겼습니다. 그것도 산 정상에서....

 나는 산 정상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당실과 선동을 보면서 문득 용문이 十勝地 라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십승지란 난리나 천재지변이 났을 때 그곳은 안전한 피난처이며,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기도나 수도에 알맞은 토속신앙의 성지라고도 말할 수 있고, 혁명가등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은둔자들의 은신처라고 할 수 있는 즉 난세를 대비해서 준비해 둔 곳을 일컬어 말한다면 바로 그 곳이 지금 내 시야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금 내 발아래에는 상부댐이 고즈녘이 누워있어 그것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내려가야 합니다. 상부댐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는 天池가 있고 한라산 정상에는 백록담이 있으나 이것들은 자연이 만들어서 주어진 것이라면 상부댐은 인간이 시대의 발전을 도모하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부댐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둑의 길이는 600m가 넘었고 지금도 곳곳에 공사는 진행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御臨湖의 由來및 意義” 를 일부 인용하고자 합니다.

“御臨湖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 군대와 전투시 이곳 城에 親臨하였다는 뜻에서 전래된 御臨城의 지명을 본따 지어진 명칭이며...중략

통일의 염원과 웅비예천의 기상을 드높이기 위해 백두대간 자락의 어림호 주변에 후삼국 통일기의 역사적 자취가 짙게 밴 어림산성을 복원 함으로서 그 의의를 더하였으며...하략”

 여기는 초기 철기시대 때부터 집 자리 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림 성지가 되었고 삼일목장이 되었으며 얼마 전까지도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생활하였다고 하며 2004년 4월부터 양수발전소 건설 공사를 시작 2011년 7월에 완공 하였으며 예천양수발전소는 단일 호기로는 국내 양수발전소 중 최대용량인 40만㎾ 2기를 71만평의 부지 위에 건설 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기서 나에게 자문을 해보고 또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상부댐은 자연의 훼손이냐! 자연의 경영이냐!”라고.

상부댐 입구에는 거대한 화강암에 '御臨湖'라고 예서체로 음각돼 서 있었으니 이 글씨는 초정 선생님이 쓰신 것으로 그 웅장하고 힘찬 필치는 우리들을 압도하였으며 존경하는 선생님의 글씨를 여기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려가야 합니다. 잘 닦아진 도로를 통해 용문사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허리골로 빠졌습니다. 해발 810고지의 매봉산과 그 아래 고즈녘이 펼쳐있는 용문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건너편 국사봉도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허리골에서는 祥泉(변태연)선생의 선친 묘소를 지나치게 되어 참배하고 허리골을 경유 금당실에 도착할 때는 저녁식사시간이어서 敞田(박우희)선생의 배려로 산행후의 맛있는 만찬을 즐기고 일정을 마감 했습니다.

 봄을 찾아 나선 우리들에게 봄은 한발 앞서 우리에게 다가와 있었습니다.

                           2013,   3,    25,  

                                                이 승훈

마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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