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약 력 소 개
김승동면장은 1950년 11월 13일 예천읍 대심리 468번지에서 출생하셔
1975년 2월에 군복무를 마치고
가난했던 농촌부흥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같은 해 6월 20일 용문면사무소에서 초임발령을 받고 근무를 하시다가
77년 예천읍 사무소를 거쳐서
86년부터 예천군청에서 근무를 하셨으며
2006년 군의회 전문위원, 2007년 지보면장, 2008년 개포면장을 거쳐서
금년도 1월에 용문면장으로 부임하시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34여년간을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 봉사해 오셨습니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김수남군수님을 비롯하여
도지사와 장관 그리고 국무총리 등 10여회에 걸쳐 표창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금년 12월말에 공로연수를 거쳐서 20100년 12월에 정년퇴직을 하게 됩니다.

송
별 사
존경하는 이장님, 기관단체장님을 비롯한 면민 여러분과 출향인 여러분 그리고 동료공직자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리고 공직생활을 접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저의 오늘 이임식에 이렇게 많이 참석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나고 보면 세월은 정말로 빠르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75년 제가 용문면에 초임발령을 받고 6월의 태양이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쏟아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일요일임에도 첫 출근을 하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공직자로서의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약 2년간을 근무하고 용문면에서 익힌 선진행정을 바탕으로 열심히 근무하다가 지난 1월에 다시 용문면에 발령을 받아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를 해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두 3년정도를 용문에서 근무한 셈이 됩니다.
그동안 면민 여러분들의 협조에 감사를 드립니다.
되돌아보니 세상은 정말로 많이 변했습니다.
제가 처음 용문에 왔을 때는 알콩달콩 살아가는 인심 좋은 면민이 일만 이천명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용문에서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받고 저는 일요일도 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덜커덩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다니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끔히 포장된 골목에는 자동차가 넘쳐나고 당시에는 젊으신 분들도 많아 면민들의 도움으로 보람차게 일을 했습니다만 산업화로 젊으신 분들은 다투어 고향을 떠나 이젠 인구는 이천칠백여명으로서 그것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잇는 딱한 현실입니다.
그 당시에 젊으셨던 청년들은 백발이 성성한 채로 젊은이처럼 일을 하시고 고령화로 인해 현재의 저와 같은 또래들도 많치 않아 어려운 고향을 지키시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이 정말로 고맙기만 합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구촌이 좁아지면서 농촌의 현실이 더욱 어렵긴 해도 많은 분들이 소득증대를 위해 부지런히 연구하며 특화작목을 개발하는 등 고소득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무척 아름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우리 군정이 나날이 성숙할 수 있도록 묵묵히 성원을 보내주시는데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천년의 불심이 안개처럼 서리고 유교와 기독교 정신을 고루 갖춘 십승지의 길지로서 숭고한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용문은 공직자로서 한번만 근무하는 것으로도 자랑스러울텐데 저는 초임과 공직생활의 마무리를 용문면민과 함께 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면서 가슴깊이 오래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그래서 공직을 떠나서라도 면민 여러분과 출향하신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운은 물론 용문면이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직원 여러분들도 용문면에서 근무하는데 대하여 높은 긍지를 가지고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하여 용문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면민 모두가 참석하시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만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아 함께 하지 못한데 대하여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새해 경인년에도 더 좋은 일 많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34년간 공직생활로 수고하신 김승동면장님을 향한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