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40·50대는 왜 초등학교 동창회에 설렐까
작성자관리자 @ 2008.04.24 14:46:52

 

 
과거를 만나 오늘을 위로받는다 

  싸우고 울던 기억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되어 기억되는 초등학교 시절. 40~50대 사이에 순수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동창회가 인기다. (중략)

 

중년들이 이토록 초등학교 동창회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꿈 많고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는 추억 여행


"2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갑니다. 몇몇 친구들은 10년 전부터 끼리끼리 모였나봐요. 중·고·대학교 동창회가 다 열리지만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푸근하고 편하지가 않아요. 매달 모이긴 벅차서 짝수 달에만 모이는데 매번 옛날 이야기만 하는 데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얼굴은 영감이지만 마음만은 초등학생이 되는 것 같거든요. 유일하게 잔머리 굴리지 않는 모임이라 좋아요." (중략)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투자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나 꽃미남을 만나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와서 자신들이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어 모인다. 지금은 교수, 택시기사, 변호사, 사장, 꽃집 주인, 의사, 포장마차 운영 등 각자 다른 명함을 내밀지만 그 명함으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그저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던 코찔찔이' '항상 늦게 오던 지각대장' '도시락에 꽁치 한 마리를 반찬으로 싸오던 통큰 아이' 등 초등학생 시절의 특징으로만 기억하고 그대로 인정해준다.

 이곳에서는 대학 총장이나 유명 스타도 그저 똑같은 친구일 뿐이다.

 바로 어제 들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당장 몇시간 전에 풀어둔 시계가 어디에 있는지 까마득하기만 하지만, 30~40년 전의 일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고 서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퍼즐 맞추듯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이 나이에 어디에서 찾으랴. 갑자기 전학간 여자 동창을 찾아 무작정 기차를 타고 그 친구 집에 갔다가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빗자루로 호되게 맞은 일, 친구 도시락 몰래 꺼내먹고 개구리를 넣어둔 일, 소풍갔을 때 순희의 고무신을 감췄던 일…. 이젠 공소시효가 지나 더 과장되게 무용담을 늘어놓고 지난 일을 고해성사한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주름이 늘어나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도 원형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때 새침했던 영희는 지금도 새침하고, 그때 까불던 창식이는 여전히 주책스럽고…. 딱지치기나 고무줄놀이 대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칠성사이다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면서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만은 소년, 소녀가 된다. (중략)

 해놓은 것은 없는데 할 일은 태산 같은 나이,

거울을 보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는 시기,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 나이.

지치고 외로워서 쉬고 싶어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 제대로 쉴 여유도 없는 40~50대들에게 초등학교 동창회는 고향의 약수터 역할을 한다. 갈증을 식혀주고 말없이 위로해주는….

밍밍하지만 한없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약수터를 찾아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삶의 고뇌가 깃털처럼 가벼웠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동창회를 찾는다.

서로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발견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같이 손잡고 늙어갈 친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면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30년 만에 소집된 얼굴들을 만나니 그 낯짝 속에

근대사의 주름이 옹기종기 박혀있다

좀이 먹은 제몫의 세월 한 접시씩 받아놓고

다들 무거운 침묵에 접어들었다

화물차기사, 보험설계사, 동사무소 직원, 카센터 주인, 죽은 놈

만만찮은 인생실력들이지만 자본의 변두리에서

잡역부 노릇하다 한생을 철거하기에

지장이 없이 없는 배역 하나씩 떠맡고 있다

찻집은 문을 닫았고 바다도 묵언에 든 시간

뒷걸음치듯 몇몇은 강문에서 경포대까지

반생을 몇걸음으로 요약하며 걸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던 간밤의

풍경들이 또한 피안처럼 멀어라. (박세현 시인의 시 '너무 많이 속고 살았어')

 

                   - 24일 경향신문에서 -

 

 



마을소식

마을이야기 [644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ycg.kr/open.content/geumdangsil/news/talk/?i=129114&p=644 입니다.

이 QR Code는 현재 보시는 <마을이야기 [644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