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오라버니
재경 면민회가 있는 날이다. 고향 사람들의 만남은 언제 어디서든 반갑고 푸근하다. 며칠 전 친정 장조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모님 면민 회 하는 날 아버지가 오신데요, 그래서 저도 나갈 거예요.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조카의 목소리는 들 떠 있었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그렇게도 반갑고 고맙던지?.......... 3년 전 오라버니는 가벼운 풍을 맞고 그 후 투병중이시다. 원행을 삼가셨고, 올 봄만 해도 뵙기가 딱 할 정도로 입맛을 잃고 초췌한 모습이셨다. 젊은 날 내 오라버니의 매력인 카리스마는 어디로 숨었는지?...... 축 쳐진 어깨에 언어조차 어눌해졌음에 이 동생은 억장이 무너지는 서러움을 감당키가 힘들었었는데.......그런데 내 오라버니께서 오신다니 어찌 내가 반갑지 않겠는가? 해를 거듭하면서 나이라는 숫자가 더 해지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가슴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지만 혈육이란 인연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또 어디 있던가? 그래서 천륜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린 날 학교 운동장에서 선배 언니들이 길게 땋아 내린 내 머리를 만지고 귀찮게 할 때 그건 밉지 않은 표현임을 잘 알면서도 난 쪼르르 내 오빠를 찾아가 앙앙 울면서 오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했었다. 밤새 눈이 하얗게 쌓인 운동장을 아침 일찍 등교해서 좋아라고 뛰어 다니다가 시린 발을 감당 못하면 오빠 교실 복도에서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럴 때면 오빠는 나를 교무실로 업고 가서 난로에 발을 녹여 교실로 데려다 주었었다. 지금 나는 그 철부지 시절의 오빠의 힘을 믿는 의기양양한 계집아이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어린 날 나에게 내 오빠는 크나큰 힘이었다. 나에게 오빠가 있다는 건 아무리 큰 두려움도 걷어 낼 수 있는 태산 같은 파워였다. 자라면서 무섭기도 했었지만, 분명한건 오빠가 날 대단한 동생으로 인정해주고 기대를 가져 주었다는 점이다. 때로는 오빠의 기대감이 짐이 되어서 싫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가는데 크나큰 자신감으로 영글었음을 감사드린다. 난 이렇게 오빠에게서 힘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기대고 있었다. 고향집 넓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객지에 나간 동생들을 기다려 주시는 느티나무 같은 내 오라버니. 그 오라버니의 외출에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것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우리들의 그늘막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 때문이리라. 바램 때문이리라.
행사장에 도착하니 오라버니와 장성한 조카 둘이 도착 해 있었다. 어린 시절 운동회 날 운동장 앞에 쳐진 그늘 막 밑 본부석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찾았을 때와 같은 반가움이다. 가슴이 펴지면서 어깨가 올라간다.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뜨거운 피가 온 몸에 퍼지면서 감사한 마음이 조용히 일렁인다. 피붙이가 가까이에 있어서 위로 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행운이든가? 이만하면 난 참 복도 많다.
- 2005년 11월 마지막 날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