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친구, 가을은 떠날 준비에 바쁜데 돌아 올 겨울은 저만치서 서성거리고만 있다네.
이맘 때 쯤이면 우리가 코흘리개시절 다니던 그 교정의 운동장 동쪽에 두 줄로 서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밑에는 노랗게 물이 든 예쁜 잎들이 수북히 쌓여 있겠지.
우린 그 낙엽에서 뒹굴며 노란은행잎을주워서 꽃을 만들며 놀기도 하고 ,
작고 예쁜 잎은 책갈피에 끼워두기도했지.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모교, 용문초등학교, 그 교정은 참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던가?
남쪽 도로변에는 키 큰 측백나무가 일 열로 줄지어서서 늘 푸르름을 잃지 않았고
동쪽의 은행나무와 그 밑의 학용품가게는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었지.
교장선생님의 사택 옆의 우물은 얼마나 깊었던지 두레박끈을 한참 걷어올려야 물을 뜰 수 있었는데
뛰어놀다 목마를 때 그 물을 마시면 얼마나 달고 시원했던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네.
교사 뒤쪽으로는 기숙사겸 양호실과 창고 화장실이 나란히 있었고 그 뒤에는 키 큰 배나무가
너댓그루 있어서 운이 좋은 가을날이면 쉬는 시간에 주먹만한 배를 주워먹기도 했었지.
우리가 학교에 입학할 때는 기와지붕에 검은 콜탈을 칠한 판자로 지어진 교사 두채뿐이었고
앞교사 가운데가 교무실이었는데 봄이면 교무실 앞의 오래묵은 박태기나무에는 연분홍빛
박태기꽃이 가지가 안 보일만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네.
그 박태기꽃이 우리학교의 영춘화였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해보네
운동장 서쪽과 남쪽에 일열로 나란히 벚꽃나무가 서 있었는데 벚꽃이 피면 그 향기는 온 교정을,
아니 온 금당실마을을 벚꽃향기로 가득하게 하기도 하고 벚꽃이 질 무렵 바람이 불면 하얀 꽃잎이눈처럼
운동장에 날려다니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니던가.
하지만 꽃이지고나면 노란벌레가 생겨서 가지마다 굼실굼실 기어다니면 남학생들은 책보를 덮어쓰고 나무에 올라가서 흔들고 여학생은 밑에서 쓸어 모았지.
여학생이 나무밑에 오면 짖궂게 나무를 흔들고 여학생에게 벌레가 떨어지면 어마나 소리치며 기겁을 하던 것이 무척 재미있었지.
그래도 살아남은 벌레는 이른 여름이 되면 나비가 되어 운동장은 온통 하얀나비들이 춤솜씨를 뽐내는 축제의
무대가 되기도했지.
송림에는 저마다 이리저리 휘어져서 멋을 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푸른 기운을 우리들에게 주었고 더운 여름날에는 두꺼운 그늘을 드리워주었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늘어진 가지로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어느 그림엽서나
크리스마스카드보다 아릅답지않던가?
사계절 중 어느 한 계절도 아름답지 않던 때가 없던 우리들의 모교.
우리의 몸은 늙어져도 어머니 품같이 아늑하고 아릅답던 우리들의 모교와 그 속에서 뛰며 놀던 어린 시절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잊지마세나,
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