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고향의 맛-호박잎
작성자관리자 @ 2006.10.23 15:27:20

 

 

 

고향의 맛 -호박잎

 

추석 차례를 모시고 서울로 오는 차 시각까지는 여유가 좀 있었다.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동안 밀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데

둘째 질부가 호박잎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부지런하신 큰 형님께서 언덕배기 흙이 보이는 곳을 파고 심어 놓은 호박 넝쿨을 향해서

우리는 시꺼먼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나갔다. 그것도 큰 것으로 골라서.

올해는 호박잎다운 호박잎을 먹어 보지 못했다.


더운 여름 푹 퍼진 보리밥 한 술을

누렇게 찐 호박잎에

매콤한 풋고추 송송 썰어 넣고 

밥 위에 찐 햇 된장 한 숟가락 푹 떠 놓아서

입을 있는대로 벌리고 눈을 껌벅이면서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면

손가락 사이로 물은 주르르 흐르고,

그렇게 먹는 호박 잎 쌈이 여름의 별미였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호박잎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것 같아서 재래시장에 들러 호박잎 한단을 샀다.

거금 2000원이나 주고,

집에 와서 다듬어 보니 억세서 버린 걸 생각하면 보들보들한 호박잎을 안 딸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싱싱한 호박잎이 어찌나 욕심이 나든지.

욕심에 주시는 대로 가지고 왔지만, 누구 먹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부드러운 것은 따로 신문에 말아서 비닐봉지에 싸서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식구들이 모이는 날 쪄서 쌈 싸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머지는 잘게 뜯어 비벼서 진초록의 물을 빼고 꼭 짜서 냉동실에 넣었다.


오늘 아침 냉동실에 두었던 호박잎을 꺼 내서 콩가루 국을 끓였다.

멸치 국물을 내고, 우리 간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호박잎에 날 콩 가루를 뽀얗게 묻혔다.

어릴 적엔 박 바가지에 콩가루와 호박잎을 담아서 바가지 가장자리를 툭툭 치며서

까불어 가루를 골고루 묻혔었는데.......

난 플라스틱 용기에 숟가락으로 뒤적이면서 ........

아무튼 뽀얗게 콩가루를 뒤집어 쓴 호박잎을 멸치 국물 속에 퐁당 집어넣고 뽀얀 콩가루가 넘지 않도록 지켰다.

콩가루 국에는 된장이 있어야 제 맛을 낸다고 들은 것은 있는지라

된장에 청국장을 섞어서 된장찌개도 끓였다.

또 있다. 고추장이 빠질 수는 없지 않는가?

구색 맞춰 한다고 했는데 다 해 놓고 보니 그래도 빠진 것이 있네,

호박잎 콩가루국에는 찬 바람에 굵은 애동호박을 듬성듬성 몇 칼 채 썰어 넣으면 한결 맛이 있던데.......

할 수 없지뭐, 그냥 먹을수 밖에는.


오늘 아침 우리 식구는 밥 한 공기를 국그릇에 뒤집어엎고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섞어서 입이 비좁도록 한 그릇 뚝딱 먹었다.

너무 맛있다고, 먹는것 같다면서.......

오늘 아침 식사는 어릴적 엄마가 해 주시던 향토 음식이었다.

늘 그리워하는 고향의맛이었다.

호박잎을 따서 챙겨 준 우리 질부들에게 감사한다.

                                             

                                                                     -  2006년 10월 어느 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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