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황진이 내력
작성자관리자 @ 2006.09.21 20:01:10
             ★  네이버에 황진이 내력이 있어 함 올려 봅니다 ★
 
황진이黃眞伊 (?~?)
조선 중종 때의 시인이자 명기(名妓)였다. 일명 진랑(眞娘)이라 불렀고, 기명(妓名)은 명월(明月)이였다.
황진이는 시를 굉장히 잘 썼다.개성에서 태어났으며 주요작품은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들이 있다.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井初月詩)》 등이 있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이란 아전의 딸로서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황 진사의 아들과 서로 반하였다.
둘은 정을 통하였지만 결혼은 할 수 없는 사이였다. 이 후 진현금은 딸을 낳았는데, 바로 황진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황진이의 거침없는 성격과 미모는 돋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황진이가 글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상여가 황진이의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황진이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동네 총각의 상여였던 것이다. 황진이가 밖으로 나가 슬프게 곡을 하였더니 그때서야 상여가 움직였다.
이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적에 입적하게 되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되자 각지의 내노라 하는 풍류객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송도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모두 황진이의 미색에 반했을 뿐, 그녀의 인품과 절개를 인정하고 대우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송도 유수였던 송 씨가 첩의 집에서 기생들을 불러놓고 잔치를 벌였다.
송 씨는 특별히 황진이를 그의 옆자리에 놓았다. 송 씨의 모습을 내심 살펴보던 첩이 질투를 느껴 갑자기 뛰쳐나오더니 황진이의 머리채를 잡고 놓지를 않았다.
잔치가 파하고 화가 난 송 씨가 첩의 행동을 나무라자, 첩은 황진이가 그렇게 뛰어난지 몰랐다며 퉁퉁 부어 대답하였다.
황진이는 뛰어난 자색만으로 이름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美)를 아는 예술가이자 훌륭한 시인이었다. 현재 전해오는 시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송도에는 지조 높은 인물이 둘 있었는데, 송악산 지족암에 있는 지족선사와 성리학의 대가 화담 서경덕이다. 이들의 명성이 자자함을 듣고 황진이는 그들의 정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먼저 지족선사를 찾아갔다. 지족선사는 평생을 참선하며 수련한 선승이었다. 황진이는 지족선사를 유혹했다.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지족선사는 결국 황진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계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녀는 다시 서경덕을 찾아 나섰다.
서경덕은 성리학 중에서도 이기일원론을 확립시킨 유학자였다. 그녀는 서경덕을 찾아가 "글을 배우러 왔노라"고 청했고, 서경덕은 허락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가까이 굴어도 서경덕은 반응이 없었다. "한 방에서 잠을 자겠다"고 해도 그렇게 하라며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서경덕의 인물됨을 진심으로 흠모하게 되었다. 서경덕에게서 진정으로 학문과 사상을 배웠다. 서경덕을 떠날 때는 송도에는 삼절이 있는데 자신과 서경덕, 그리고 박연폭포라는 말을 남겼다.
서경덕이 죽고 난 후 황진이는 서경덕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을 두루 찾아다녔다고 한다. 금강산, 지리산, 속리산, 묘향산을 막론하고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30세가 넘었을 때 황진이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전라도 나주에 당도했다. 마침 나주목사가 연회를 베풀고 있었는데, 초라한 차림의 황진이가 노래 한 수 읊고 음식을 청하였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아무래도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남루한 차림의 그녀에게 아무리 이름을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떠날 즈음이 되어서야 자신이 황진이라고 하자, 사람들은 두고두고 황진이를 보았노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러 곳을 두루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여독을 풀고 있는데, 담 밖에서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자니 분명 서울의 풍류객 이사종이겠다 싶어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며칠을 함께 보냈다. 이사종이 함께 살자며 설득하자 황진이는 망설이다가 40세가 되는 6년 동안 만이라고 다짐을 받았다.
6년이 지나자 이사종은 그녀를 붙잡았으나 황진이는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송도로 돌아갔다.

(출처 : '황진이의 시를 찾습니다.[내공 100]'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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