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죽림리의 내력

<국화 : 무궁화꽃>
죽림리의 역사적 배경
이곳에 선돌 3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BC 7C)에 이미 사람이 살았었고 신라 초 6촌중 대수촌이 이곳일 가능성이 있다. 고려 초에는 금당사라는 대찰이 있었다 하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중엽에 권오상(1475-?)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는데 마을 뒤의 대밭과 마을 앞의 적은 못(沼)이 있어 죽소(竹沼) 또는 대수(竹林)라 하였다.
본래 예천군 휴구곡면 죽림동의 지역으로 1913년에 제고면으로 개칭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문면 죽림동이라 하였다.
예천권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중앙에는 울릉도에서 15세기 중엽에 옮겨 왔다는 향나무가 있고 대동운부군옥의 목판 677장과 20질의 책, 수헌집 목판과 2질의 책, 초간문집 목판과 3질의 책, 해동잡록 14질 등이 이곳에 있고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도 있다.
야당은 대수 동쪽에 들에 있는 마을로 들에 있는 금당실이란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