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선유동과 관련된 마을 내력
작성자관리자 @ 2006.08.25 11:02:17

 
사부리의 내력
조선 중종때 순흥 안씨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고 경주 최씨가 우망에 와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년)을 피하여 경주 김씨와 전주 이씨가 들어와 원사부가 열렸다고 한다.
1780년경 두천리 인천동에 살던 파평인 윤자필(尹滋弼)이 양지 바른 곳에 마을을 개척하여 마을 서쪽에 사창이 있어 서창이라 하였다. 1800년경 예천 임씨가 우망에 또 들어왔다.
본래 예천군 유리면의 지역이었는데 1913년에 제고면에 속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망동과 사부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사부동이라 하였다.
憂忘(우망골) 서창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순흥 안씨, 경주 최씨가 차례로 들어와서 지형이 오망하게 생겨서 우망골이라 하였다 한다. 또 임진왜란때 안씨 총각이 최씨 처녀와 결혼한 이튿날 의병으로 가서 소식이 없자 최처녀는 기다림에 지쳐 죽으니 그녀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 이제는 근심을 잊으라는 뜻으로 우망이라는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도 한다.
원사부(元沙夫, 沙夫, 사부랭이, 仙遊洞) 임진왜란때 경주 김씨와 전주 이씨가 들어와 마을이 열렸다고 한다. 그들은 마을 앞의 큰 바위에 삼봉산하선유동(三峰山下仙遊洞)의 일곱자를 새기고 선유동이라 하다가 1900년경 모래가 뜬다는 소문이 있어 사부동이라 하였다.
서창(새마) 밖사부랭이 남쪽에 새로된 마을인데 조선 후기에 이 마을의 서쪽에 사창(곡식으로 세금을 받는 국가창고)이 있었으므로 서창이라 하였다. 서창의 쌀을 원류리 원집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지도실(知道谷) 서창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 뒤의 불당골에는 知道庵이 있었다. 쥐도새도 모르게 피난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마을 앞에는 반송 한 그루가 있는데 동신나무라고 한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지방 의병장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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