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성현리 내력
작성자관리자 @ 2006.08.23 11:02:28
 
 
성현리 역사적배경과 마을현황
고려때 예천인 흔경(昕慶)이 이곳 저구곡으로 와서 세거하다가 고려 충목왕(忠穆王)때 姓이 왕의 이름과 같다고 하여 예천 권씨로 사성(賜姓)되기도 하였다. 고려때 복천사라는 절이 이곳에 있었는데 우물이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서 복천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 동래인 정난무(鄭蘭茂 1438-1501 밀양부사)가 이곳에 와서 세거하다가 떠나갈 무렵 1601년(선조 36)에 나주인 정윤우(丁允祐1539-1605 감사)가 이곳에 와서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한편 1580년경 청주인 韓漂(한표)가 성암(省岩)을 개척하였다.
본래 예천군 휴구곡면의 면소재지 지역인데 1913년에 제고면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암동(천내), 와현동(외고개), 중리동(중마), 복천동(복천), 신리동 일부을 병합하여 성암과 와현의 이름을 따서 용문면 성현동이라 하였다.
복천(복천, 福田) 성현리에서 두번째 생긴 마을로 왜고개 북쪽에 있다. 고려때 복천사가 있었고 정난무, 정윤우가 차례로 개척한 마을이다.
중리(中里, 지우실, 중마, 제우실, 제고곡, 휴구곡) 성형리에서 제일 먼저 생겼고 제일 큰 마을로 저구곡면(제고면)의 소재지여서 중리라고 한다. 휴구곡면(지우실)은 성현, 덕신, 방송, 구계, 죽림, 노사, 직리이었고 제고면은 휴구곡면과 유리면(원류, 두천, 내지, 사부)을 합친 것이다.
省岩(생암, 川內) 왜고개 동쪽에 있는 마을로 용문천 안쪽이 된다. 마을 앞길에 큰 바위가 있어 다니기에 불편하므로 살피고 다니라는 뜻에서 생암이라 했다고 한다. 1580년경 한표가 이 마을을 개척할때 당시 마을 가운데 냇물이 흘러서 천내라 하였다 한다.
와현(瓦峴, 왜고개, 애고개) 중마 동쪽 왜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쫓겨나 아이를 업고 떠나 가다가 이곳에서 죽었다 하여 애고개라 하고, 기와공장이 있었다. (덕신 권동수 형님 인빌사진을 이용하오니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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