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원류리 마을 내력
작성자관리자 @ 2006.08.21 17:56:22
원류리 내력
이곳은 용문사(870년 창건)에서 설치한 여관(院)이 있던 곳인데, 타지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여 생겨난 마을로서 원(院)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때 明의 지사로 이여송을 따라 종군했다가 정탁(鄭琢 하금곡리에서 출생)의 구함을 받아 귀화한 두사충이 명당을 찾던 중 이곳 원에서 쉬면서 새원(新院)이라 하면 더욱 좋겠다고 하였다 하고, 양천인 허순(許珣 진사)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또한 1630년경에는 감천 문씨가 문촌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본래 예천군 유리면의 지역인데 1913년에 제고면에 속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원동와 본류동(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원류동이라 하였다.
신원(新院, 새원) 문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때부터 오가는 이들의 편리를 도와주는 院이 있었다.(원터가 있음)
새터(새터마, 新基, 草間亭) 원류리에서 가장 중심되는 마을로써 19세기 후반에 신원에 살던 사람들이 옮겨 왔다고 한다. 앞냇가에 초간정(죽림리 지역)이 있다.
팔찌기(八積, 八賊) 문촌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8부자가 살아서 8노적가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둑골(죽림리)에 8명의 도둑이 있었다고도 한다.
허릿골(흐릿골, 허리골, 希夷, 希里, 流里, 希弟, 本流) 원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이 마을 사람들은 정감록의 十勝之地(십승지지)가 바로 여기라고 주장한다. 한길에서 안보이는 마을이므로 피난처로 알맞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 이름을 따서 유리면(流里面)이 되었고, 유리면 소재지이었다. 마을 뒤에 방아 살개처럼 생긴 형제봉이 있고 그 봉의 낮은 목의 지형이 허리처럼 생겼다고도 한다. 16세기에 함양 박씨 希夷堂 박수겸(朴守謙 蕓의 아들)이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문촌(文村) 허리골 남쪽 큰길 가에 있는 마을로 감천 문씨가 개척하여 살다가 떠나가고 각성촌이다.
鳴犬地(명견지, 面境地, 민경지) 새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개처럼 생겼다고 하며 또는 앞산에 猛虎出林形(맹호출림형)의 명당이 경계지점(境界地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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