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그 중 예천군은 6명(건국훈장 애국장1, 건국훈장 애족장 1, 대통령표창 4)이다.(榮州新聞 2006/08/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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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협(數十年 歲月이 흘렀어도… “님의 나라사랑은 잊히지 않았다”: 醴泉 出身 抗日獨立運動家 이종협 先生, 解放 61年·死亡 80餘年만에 功績 認定) [記事] :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10여년을 일경의 눈을 피해 오매불망 조국의 독립만을 열망하며 전국을 떠돌다 숨을 거둔 항일 애국지사가 해방 61년이 지나고 숨진 지 80여년 만에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됐다.
이종협 선생은 1919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그해 4월 2일 일본 경찰에 체포돼 4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뒤 일경의 감시의 눈을 피해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전국을 떠돌며 항일애국 운동을 하다 1929년 삼척에서 서른넷의 나이에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한 것으로 가족들은 알고 있다.
선생의 가족들은 해방 이후 모두 북으로 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선생의 제수인 권점례 할머니(101·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와 가족들은 수상 소식을 접하고 잃어버린 가족사를 찾은 것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권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중희(56, 수원시) 씨는 “큰아버지가 당시 옥고를 치르고 안동형무소에서 출감할 때 주민들이 말을 준비해 고향으로 모셨다고 들었다 며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큰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제야 조금은 보상되는 듯해 너무 감격스럽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씨는 “큰아버지가 출감하신 뒤 일경의 눈을 피해 고향을 떠나신 후 당시 남은 가족들까지 큰아버지의 행적을 쫓는 일경들에게 수없이 고문을 당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큰아버지의 항일애국 활동으로 아버지 형제들 모두가 기구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너무나 가슴이 후련하다”며 “두 아들에게 잃어버렸던 항일애국지사라는 가족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쁘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한편 선생의 형인 규원 씨는 일제 치하에서 면 서기를 하다가 단발령에 반발해 공직을 그만 두었다고 전해진다.
(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6/08/16)
출 처 : 예천군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장병창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