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아랫 금당실은 어디일까?

아릇 금당실(하금곡리) 내력
15세기 전반에 예천인 권유손(權幼孫 ?-1456 감찰)이 성현리 중마 에서 오룡곡으로 이사하였다. 금당실로 통칭되었으나 그 아래쪽이 되므로 아릇 금당실, 또는 하금곡동이라 하였다.
16세기 전반에 경주인 이절(李節 1491-1578)이 권오기에게 글을 배우면서 이웃한 곳에 마을을 개척하여 버들밭이라 하였다. 또 예천 권씨가 세거하던 아랫 금당실은 1869년에 함양박씨 열부각(烈婦閣)을 주막거리에서 마을 안으로 옮겨서 세우고 부터는 여각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각(여각마) : 하금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예천인 권국주(權國柱)의 아내 함양 박씨의 열부각이 이 마을 앞에 있다. 마을 안에 있는 곳을 특히 안마(안골)이라 한다.
용두(용머리, 거북대가리) : 두마리의 용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지형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곳의 지형이 거북머리 모양이라 해서 거북대가리라고도 한다.
남짝 : 여각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마 : 여각 북쪽에 새로 된 마을을 말하며 현재 용화사에만 기거하고 있다.
버들밭(柳田, 큰마) : 여각 서쪽 들에 있는 마을로 李節이 개척할 때, 마을 앞에 버드나무 밭이 있어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가 둥지를 튼 유지앵소(柳枝鶯巢) 형국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이 컸던 省吾堂 이개립의 정자가 이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인산(개금재, 계금자, 게금재) : 여각 북쪽에 있는 마을로 게금(개암)이 많이 있었으며 또한 인산서원이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약포 정탁(鄭琢 1529-1605 우의정)이 이곳에서 태어날 때, 용문사 뒷산에서 부터 서광이 이곳으로 비치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