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을 충효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한 지역의 정신문화를 대표하여 충효의 고장이라고 내세울 때는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충효사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토양과 뿌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예천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에 큰공을 세운 약포 정탁 선생이 충(忠)을 대표하고, 명심보감에 오를 정도로 효행이 지극했던 도시복 선생을 효(孝)의 대표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되려면 그것이 일회성으로 그치거나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지역 주민들에게 뿌리 깊게 이어져 가는 일관성과 정체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많은 고비가 있었으나 일본제국의 침탈로 모진 수난을 겪었던 시절이 어느 때보다 힘겹고 어려운 고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건지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구한말에 예천 지역의 의병운동을 이끌어 나라를 지키는 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예천의 긍지와 자존심을 살리는 데 앞장섰던 의병장 박주상(朴周庠) 선생과 엄혹한 식민지배 아래서 일본제국의 중심적 상징인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역범으로 몰려 조선인의 기개를 유감 없이 떨쳤던 박열(朴烈) 의사의 기녑비를 세워 오늘날 우리 지역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살리고 올바른 민족교육 활동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박주상 선생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조선 침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전국적으로 일어난 의병운동에 발맞추어 65세의 고령에 예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이강년, 김하락 등 혁혁한 의병장들과 손잡고 일본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그러다가 일본의 압력을 받은 고종이 의병 해산의 조칙을 내리자 선생은 고향으로 물러나 지친 몸을 쉬면서 사태를 관망했습니다. 그러던 중 1905년에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고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아 조선 합병의 야욕을 드러내자 전국적으로 2차 의병운동이 일어났으니, 선생은 다시 예천 의병장으로 나서서 침략군과 맞서 싸웠으나 워낙 고령으로 무리하게 싸운 데다가 병환이 겹쳐 1908년 78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82년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90년에 국민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으며, 2001년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부인과 함께 이장되어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박열 의사는, 누대를 금당실에 터 잡고 살아온 집안으로 조부 때 문경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중 기미년에 만세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쫓겨 일본에 건너가서 사상운동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일본제국 최고 권력자인 천황 부자를 폭살할 계획으로 폭탄을 구입하려고 노력하던 가운데 때마침 일어났던 관동 대지진으로 일이 무산되었고, 의사는 대역범으로 몰려 일본 대심원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3년 간의 오랜 세월을 일본 감옥에서 보낸 다음 일본의 패전과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석방된 후 의사는 재일교포들의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하여 애쓰다가 고국에 돌아와 장학 사업에 힘쓰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으로 잡혀가 거기에서 평화통일을 위하여 힘쓰다가 1974년에 세상을 떠나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혔습니다.그러자 서울에서 박열 의사 추모식을 거국적으로 거행하였으며, 1989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사십 없이 자신을 바쳐 싸웠던 박주상 의병장과 박열 의사의 기념비를 두 분의 본고향인 용문 금당실 마을에 세우려고 합니다. 금당실은 전통 문화마을로서 앞으로 예천 지역의 문화 답사에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기념비 건립은 예천의 정체성을 찾고 정신적 뿌리를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예천 지역의 모든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민과 관이 마음을 함께 모아 뜻깊고 실속 있는 사업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의병장 박주상 선생.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