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순례일기 - 씨알의 집 귀농인들과 만남
씨알의 집, 귀농인들과 만남 (총 536일). 오늘 맺은 인연 30명
오후 순례에는 어제 도토리 묵을 맛있게 해주셨던 김두년 선생 부인 변정숙 사모님이 동행하셨다. 전교조를 하는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다는 얘기에는 가슴이 아렸다.
오늘 순례 길이 하필이면 친정이 있는 용문 방향이다. 어제 친척 장례식에도 못갔다는 변정숙 사모님은 순례길 도중 행여나 누구 아는 분을 만날까봐 모자를 눌러썼다.
우리 일행은 용문면 소재지를 지나 동학 농민군을 이끌었던 전기항 의사 기념비를 방문했다. 무덤가에는 철모르는 제비꽃이 피어 있었고, 가을 하늘은 맑고도 드높았다. 순례단의 가수 김현지 님은 기꺼이 동학 농민가를 헌가로 바쳤다.
순례단은 지금 용문면 원류리 귀농 농부 박덕환 님 댁에 들어 있다. 이곳은 '허리골'이라고 불린다. 장작불이 가마솥을 달구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갓 배운 노래로 끊임없이 재잘되는 곳, 알밤을 주워 장작불에 구워 먹고 양말을 빨아 널었다. 박덕환 님은 함석헌 선생님과 인연이 깊은 듯 했다. 농장 이름을 '씨알의 집' 이라 짓고, 푯말을 세워 놓았다. 10년 전 이곳에 들어와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밭을 일구고 낮에는 농사일로 밤에는 명상과 책 읽기로 자신을 다독였이며 사셨을 박덕환 님은 순례단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했다.
어느새 20 명의 귀농인 가족이 모이자 저녁을 먹고 나서 간단한 자기 소개에 이어 도법 스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 돈 논리에서 오는 자기 철학' 과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박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 철학'을 역설하셨다. 자본주의적 생존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매 순간 다치고 상처입으면서 나도 새로운 삶의 방식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귀농할 생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없다. 어려서 부터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내 머리속에 각인돤 농촌 삶을 내 업으로 삼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귀농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 고민의 깊이와 자기 성찰, 그리고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가는 용기가 부럽다는 느낌이 왔다. 내친 김에 이러한 성찰과 용기가 농촌 공동체와 접목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이제 잠시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 잘가꿔진 별밭을 둘러 보고 와야겠다. 광활할 하늘, 온전히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 박히는 별들을 나는 잔잔히 음미했다. 내가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소유할 수 없는 잘익은 가을 별들이 나를 깊은 성찰의 세계로 인도한다.
허리골에서 만나 별들에게 평안을 빈다.
주. 씨알의 집 : 이 글은 피제현 시인이 < 생명평화결사> 홈 페이지에 "순례일기"로 쓴 것을 조금 줄여서 옮겨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