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할머니와 봉선화 (선배님글)
작성자관리자 @ 2005.07.30 17: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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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와 봉선화 봉선화 피는 여름이 되면 나는 돌아가신 지
        33년이나 되는 내 할머니를 만나곤 합니다.
        불볕이 지나고 해님이 뉘엿뉘엿 꼬리를 내릴
        즈음이면 그림자처럼 조용하신 내 할머니께서는
        우물 옆 작은 꽃밭에서 조심스레 봉선화를 따셨어요.
        빨간 꽃잎과 연한 잎을 함께 따서 따끈따끈하게
        달구어진 장독 위에 가지런히 수를 놓듯 펴널었지요.
        반들반들 까만 질그릇 장독 뚜껑 위에서 새들새들하게
        곤 봉선화를 깨끗한 빨랫돌 위에 얹어서 아이 주먹만한
        결이 고운 돌맹이로 백반과 함께 곱게 찧은 다음
        이 빠진 하얀 사기 그릇에 담으셨어요.
        저녁상을 물리신 할머니께서는 오이씨 만한
        내 손톱 위에 곱게 찧은 봉선화를 쑥 뜸 말 듯
        잘게 뭉쳐 올리시고 곱게 물드라고 아주꽈리 잎으로
        정성껏 싸서 무명실로 묶어주셨지요.
        아주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이….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직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빠져버린 난 몇 번씩이나 같은 이야기를 청해 듣다가
        잠이 들기도 했고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옛날
        옛적 이야기에 길 잃은 나무꾼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북극성도, 떨어지는 별똥별에게 소원을 비는 것도
        어린 시절 내 할머니와 함께 한 여름밤의 별자리
        체험 공부였습니다.
        안동포 넓은 치마 폭 속에 모기 몰래 손녀 다리
        꼭꼭 감춰 주시고, 거친 잠에 봉선화 빠져 버릴까
        살랑살랑 부채 바람에 자장가 실어서 밤새 옆에서
        지켜보시던 내 할머니.
        곱게 물든 작은 손톱을 단정하게 깎아주시고,
        온갖 투정 다 받아 달래시면서 긴 머리 양 갈래로
        곱게 땋아 내려서,나풀나풀 깡충깡충 나들이 가는
        손녀 배웅해 주셨어요.
        단정하신 몸가짐과 깊고 넓은 사랑이, 맑은 정신으로
        욕심 없는 마음이 부처님을 닮아서 두고두고 못 견디게
        그립게 하는 내 할머니.
        할머니의 정성과 섬세한 솜씨로 남겨진 고운 모시
        조각보를 꺼내 보면서 훌쩍 지나버린 세월 속에서도
        봉선화 피는 여름만 되면 새록새록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변혜영, 용문초등 37회, 예천여고 12회>
          예천 신문에서 발췌 2005-07-29 13: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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