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기사 내용 옮겨 왔습니다.
작성자관리자 @ 2005.05.12 10:42:51
예천 99세 시각장애 할머니 "며느리가 20년째 손발돼줘"
◆100세까지 팔팔하게 / 박상철교수가 만난 100세인 ⑥

경북 예천군은 어디로 가나 산골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물이 좋고 골이 깊어 '장수지역'이라고들 자랑했다.

예천에서 만난 초장수 어른 몇 분과 그들 가족의 지극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울려오곤 한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진하게 움직인 것은장수인이시면서 시각장애자인 할머니와 그 분 가족이었다.

좁은 외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서 용문면 선리 마을 언덕 끝자락 다 허물어져가는 허름한 집에 사시는 이순복 할머니(가명)를 만났다. 할머니는 을사생으로만 99세에 이르셨는데 일흔 넘어서부터 눈을 못 쓰게 되어 바깥 출입을 못하고방에서만 살고 계셨다.

비록 눈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하셨다. 일상생활 능력이라든지 기본적 인지능력도 괜찮으셨으며 의사소통이 원활해 조사를 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진찰을 해보니 할머니 시각장애는 망막탈색소증 때문인 것으로나타났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68세 며느님에게 더 관심이 가게되었다.

며느리 박봉섭 님(가명)은 나이 스물에 시집와서 48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20년 넘게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못하고 방에만 계시는 시어머님을모시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에 대해 전혀 불평이 없으셨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같이 살고 있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한 쪽 팔목이 절단된 지체부자유자라는 점이었다.

시어머니와 자식이 모두 장애자니 온 가족을 혼자 보살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으면서도 며느님은 표정이 정말 밝았다. 며느님은 "고생이 많으시다"는 위로에 대해 "어른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며 오히려 거북하게 여기셨다.

할머니가 시각장애자기 때문에 모시는 것이 더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며느님은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계셔서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라며 시간개념이 없는 시어머님 때문에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평하지않았다. 오히려 "어머니가 집을 지키고 계셔서 좋아요"라며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답을 해 나를 민망하게 했다.

가족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괴로워도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점에 대해 언급한다는 자체가 바로 난센스임을 깊은 산속 외진 마을에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가족에게서 새롭게 배웠다.

우리가 만난 장수노인 삶을 이야기하자면 그분들을 모시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대개 며느리 자신도 이미 70대 안팎인 노인이면서 초고령이신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 그 며느리들이 부양하는 세월은평균 43년, 길게는 64년에 이른다.

우리나라 장수노인과 그 며느리들이 모두 조혼이 일반적인 시기에 결혼을 한세대였으므로 이러한 긴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인데 외국 초고령 노인 가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초고령 노인에 대한 별다른 국가적 지원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부양에 대한 부담과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텐데 심상한 얼굴로 '부모인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되묻는 며느리들을 예상외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자인 어머니와 지체부자유자인 아들을 함께 보살피며 살아가는 박봉섭 님은 이렇게 어려운 온 가족 삶의 무게를 왜 한 여성이 두 어깨에 떠맡아야 하는가, 이들 삶에 국가와 지역사회가 실제적 도움이 될 수 있는정책지원 방안은 무엇일까 등 많은 중요한 이슈를 제기하게 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며느리 박봉섭 님의 너무나 밝은 얼굴과 시어머니, 아들의 따뜻한 인간애는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연구진에 던졌다.

이들은 또 우리 연구진으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 사랑의 자기희생적 성격 등여러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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