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나 늙으면
작성자관리자 @ 2005.04.08 21:53:45
귀농하여 씨알의집 부근에 뿌리를 내리려합니다. 글 배경은 내고향 대구 앞산의 정상 마천각 부근입니다.


나 늙으면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가서 당신의 마른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 모자 두개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찻집으로 나가볼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입고 내 목에는 겨자빛 실크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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