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내고향 예천상식(재경 용문면민회부회장 권인섭님글)
작성자관리자 @ 2004.12.09 21:18:5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 가운데 ‘首邱初心’(수구초심)
    이란 말이 있다. 여우는 구릉에 굴을 파고 사는데 죽을
    때도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 쪽에 둔다는 말로
    이는 고향을 절실히 그리는 향수를 일컫는 것으로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게 마련이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 세대도 아버지 고향
    정도는 자기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은 바꿀 수도 바뀌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그곳은 언제나 그리움에 젖은 애틋한 장소가 될 것이다.

    필자는 고향에서 초·중·고교까지 다닌 까닭으로
    더더욱 애착이 가곤 한다. 그리고 대학교는 고향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와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부터 40여년 전인 60년대
    중 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서울에 거주하는 고향
    사람들을 특히 대학생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타지역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예천이라
    하지 않고, 대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좀더 가까이
    있는 안동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본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정보망이 발달되지
    않아서 서울같은 곳에서는 예천을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에게 고향을 물으면 꼭 예천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
    물론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필자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샘물 맛이 달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기로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며, 인구에 비해
    경북 지역에서 정치인을 비롯한 각계 인물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이라고 설명해 주곤 하였다.
    우리는 고향을 막연히 사랑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향에 관해 중요한 사항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예천의 최초 이름은 신라시대에 수주현으로
    부르다가 35대 경덕왕 16년(757년)에 예천군으로
    바뀌었고, 그 후 보주, 양양, 기양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6년 (1416년) 예천군으로 옛 이름을
    되찾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예천의 군목은 은행나무(정직, 결백), 군화는 목련
    (화목, 단결), 군조는 독수리(씩씩한 기상)이다.
    예천의 면적은 6백61㎢(임야 56%, 농경지 30%,
    기타 14%) 이고, 인구는 5만 6천여 명이다.
    예천의 행정구역은 1읍 11면으로 되어 있다.

    문화재는 국가 지정이 21점이고 경북도 지정이 47점이며
    대표적 사찰로는 신라 경문왕 때(870년) 두운선사가
    지은 용문사와, 신라 헌강왕 때(875년) 역시 두운선사가
    세운 명봉사가 있다.

    예천의 전통 문화로는 전국적인 활의 고장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우선 국궁은 전국 활 생산의 70%를 제작하고
    있고, 양궁은 ‘79 세계양궁대회’ 5관왕인 김진호가 배출
    되었으며, ‘2003 유니버시아드 양궁대회’를 2만 4천평
    부지의 국내 최대 경기장인 예천 양궁장에서 개최하여
    양궁의 메카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예천의 전통 민속으로는 ‘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통명 농요(중요무형문화재 84)’가 있고
    ‘92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 공처농요(경북무형문화재 10호)’가 있다.

    충효의 고장 예천의 대표적 옛 인물로는, 먼저 충으로
    고장을 빛낸 인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약포정탁 대감,
    성종때 세조의 불의를 비난하는 글과 관련되어 무오사화
    때 극형을 당한 수헌 권오복 선생,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자결한 죽림 권산해 선생이 우리 고향 출신이다.

    효행으로 귀감이 되신 분으로는 명심보감에 효행이 실린
    야계 도시복공, 부친상에 3년간 시묘살이를 한 절효
    반유공이 모두 예천 인물이다.

    예천의 유명한 농, 특산물로는 참깨와 참기름, 종마늘,
    사과, 고추, 참우 등이 있다.

    한편, 이용객들로부터 전국에서 최고로 물이 좋다는
    평을 받고 있고, 금강산 온정리 수질과 같다는
    예천 감천의 온천이 유명하다.

    이상 분야별로 우선 몇 가지만 열거하여 보았다.
    내고향 예천을 이야기 할 때는 최소한 이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고, 소개가 술술 나와야
    할 것이다. 평소에 기억을 다 하지 못한다면 간단히
    메모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고향에 관해
    많이 알아야 되고, 그것을 널리 소개하여 빛이 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인섭, 용문면 출생, 재경 용문면민회 부회장>
                        <서울 금옥여자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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