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노신사3
작성자관리자 @ 2004.11.10 10:36:03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고 보니 속이 쓰렸다
나오다 뭐라도 먹을 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청년 한명이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저 혹시 박 동준 부장님이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제가 바로 찾아 왔네요.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죠?"
"전 그저 심부름이라서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에 메모가 있을꺼에요"
"그래요. 고마워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청년은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노신사는 책상에 청년이 주고간 것을 풀어 보았다
메모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놀라셨죠. 아마 지금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죠. 뭐가 좋을지 몰라서 제가 몇가지 보내드려요. 인삼즙은 숙취에 좋다고 하네요. 일단 인삼즙을 마시고 시금치 죽을 드세요. 시금치도 숙취에 좋다고 해서요. 건강을 생각해서 드세요. 죽을 다 드시고 오렌지 쥬스로 마무리 하세요. 어제 마신 술이 다 달아날꺼에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참 이따 점심시간에 회사 앞으로 갈테니 맛있는 점심 사주세요......정 희연 드림'
노신사는 메모를 읽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정말 안에는 여인이 말한 그대로 들어 있었다
노신사는 먼저 인산즙을 마셨다
그리고 잘 포장된 죽을 꺼내었다
시금치가 들어가서인지 죽은 초록색을 띄고 있었다
죽이 속으로 들어가니 속이 조금 편안해졌다
죽을 먹고 여인이 시킨대로 오렌지 쥬스를 마셨다
머리도 맑아지고 속도 편해졌다
노신사는 여인의 메모를 읽고 또 읽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아래인데 어떻게 이런 것을 생각했는지 그저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리고 노신사는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몇번이나 시계를 보고 창밖을 내다 봤다
왜 이리 점심시간이 오지 않는지 답답했다
오늘의 오전 업무는 도대체 어떻게 봤는지 ......
노신사는 다시 시계를 봤다
11시 55분
5분이 지나면 ......
노신사는 화장실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옷을 잘 정리해서 입고 머리도 보고 신발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니 노인이 서 있었다
순간 노신사는 가슴이 내려 앉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아니었다
힘이 빠졌다
언제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해 있었는지 ......
긴 한숨이 나왔다
일에 바빠 자신도 가정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그에게 지금 회사는 사직을 권하고 있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노신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 왔다
정말 옆도 한번 쳐다보지 못하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아이들의 학교 입학이고 졸업이고 단 한번도 참석해 보지 못했다
늘 아내의 몫으로 돌리고 회사에 충실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 ......
담배가 아주 쓰게 느껴졌다
노신사는 의자 붙은 것처럼 앉아있었다
또 한 대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순간 자신이 약속이 있다는걸 생각했다
시계를 보니 12시10분
'점심을 먹으로 온다고 했는데 .....'
노신사는 급히 사무실을 나가 현관으로 갔다
아무리 봐도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힘이 빠졌다
뒤돌아 서는 노신사 앞에 누군가가 서는 것이 아닌가?
얼굴을 보니 아침에 봤던 청년이었다
청년은 노신사를 향해 목례를 했다
노신사도 함께 인사를 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갑자기 바쁜일이 생겨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요...."
"그럼 전 이만"
다시 목례를 하고 청년은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저기요 ....."
노신사는 청년에게 다가섰다
"뭐하나 물어 봐도 되겠어요?"
"말씀하세요"
"정희연씨가 뭐하는 분인지 알수 있을까요?"
".........."
"왜? 말하기 곤란해요?"
"네. 그건 제가 말씀드리고 어렵습니다. 직접 ......"
"그럼 뭐하는 사람인지......"
"죄송합니다"
청년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현관을 빠져나갔다
노신사는 여인에 대한 궁금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대체 누군지도....
노신사는 현관을 나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회사 근처의 식당들의 메뉴는 비슷하다
늘 그렇듯이 된장찌개를 시켜서 먹고 나왔다
조금 늦게 시작을 해서인지 점심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서 마시면 회사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니 메모가 있었다
'박부장님 상무님이 들어오시는 대로 오시랍니다'
노신사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분명 퇴직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노신사는 담배를 끄고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입안의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가글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자신에게 보여주는 걸 바라보았다
상무실로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점심 식사는?"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일로....."
"뭐가 그렇게 바빠요. 차나 한잔 마시면서 얘기합시다"
비서실에서 차를 들여 왔다
노신사는 상무의 친절에 가슴이 무거웠다
"박부장님 올해로 회사 생활 몇 년이시죠?"
"네......"
"20년 넘으셨죠?"
"네 "
"지난번 얘기는 생각해보셨나요?"
"..........."
"젊은 친구들도 생각해 주셔야죠. 선배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면 후배들이 언제 큽니까? 안그렇습니까?"
"......"
"젊은 친구들 요즘 일 잘 합니다. 아주 유능해요....."
"상무님...."
"너무 길게 생각은 말아 주십시오. 회사의 뜻에 따라 주시면 그에 대한 보상은 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
노신사의 말도 듣지 않고 상무는 자리에서 일어 섰다
노신사도 어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상무실을 빠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버틸수가 없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노신사는 회사를 빠져 나와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곳도 다 젊은 사람들뿐이다
나이든 사람이 갈 곳이 없다
차 한잔을 마시려고 해도 편히 마실수가 없다
셀프라는 것이 생겨서 어디를 가든 다 가져다 먹어야한다
예전엔 아니었는데.....
젊은 아가씨들이 엽차를 가지고 와서 뭘 마시겠냐구 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다
모르지 변두리 다방에 가면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는지도
노신사는 커피 한잔을 가져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만큼 나이든 사람은 없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치고 시끄럽기가 말도 못하겠다
차 한잔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더 정신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커피잔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벼랑에 서 있는 듯 아슬아슬하지 않는가 지금
스푼으로 커피잔을 휘이휘이 저으니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것 같다
노신사는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노신사를 감싸고 있다
외투도 입고 나오지 않아 추웠다
다시 회사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메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전화 요망'
또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수화기를 들고 집 전화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더니 아내가 나왔다
"당신 전화했었다며"
"전화했으니까 당신이 전화 한 거 아니에요"
"무슨 일이야?"
"오늘 몇 시에 들어 와요?"
"왜?"
"저녁 먹고 들어 오라 구요. 나 오늘 동창회 있어요. 그러니 그렇게 알아요"
"알았어......"
노신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무거웠다
노신사는 또 하나의 담배를 물었다
요즘 들어 담배가 늘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니 담배만 더 피우게 된다
노신사는 오후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겨울이라 어둠은 빨리 내려 앉는다
겨울 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움직인다
회사 생활을 한지가........
강산이 두 번 변화고 또 다시 달리고 있는데.....
지금 그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한다
젊은 시절 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데.....
이제 늙었다고 떠나라고 한다
길어져 가는 한숨을 돌아보며 노신사는 사직서를 썼다
봉투에 넣고 겉봉을 쓰려니 손이 떨렸다
노신사는 겉봉을 쓰지 못하고 서랍속에 사직서를 넣었다
자신이 왜 이리 한심한지......
애궂은 담배만 다시 물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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