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노신사1
작성자관리자 @ 2004.11.09 11:36:57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50을 훌쩍 넘긴 한 남자가 텅 빈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낙엽은 바람이 부는 대로 춤을 추고 노신사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길게 나오는 한숨이 빈 하늘을 둥글게 돌고는 저 멀리 사라진다.
정년퇴직이라는 큰 과제가 앞에 와 있기에 그저 한숨이 나오고 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 학교를 마쳐야 하는 자식도 있는데 ....
아내가 이 사실을 알면 또 무슨 소리를 할지 앞에 캄캄해지는 것도 현실이었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 하는데 라이터가 커지지 않는다 .
그때 갑자기 노신사의 담배에 불이 붙여지고 있었다.
놀란 노신사가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인에 불을 들고 서 있었다.
일단 노신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혹시 남은 담배 있으면 저도 한 대 주시겠어요"
노신사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담배를 건넸다
여인은 담배를 불을 붙이고는 길게 빨았다 내 뿜었다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노신사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이런 날씨에 왜 이곳을 찾으셨나요? 아마도 말못할 고민이 있으신가 보죠"
"..............."
"훗훗 말씀을 못하시는 걸 보니 제가 맞춘 것 같군요"
"아가씨는 왜 ....."
"저요? 전 바람을 찾아 왔죠. 오늘같이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곳을 찾아와요. 이곳에 바람이 제게는 가장 향긋하거든요"
"바람이 향긋하다........"
"네...... 그저 바람이 좋아서요. 겨울은 날이 일찍 저물어요. 선생님?"
"네"
"시간이 괜찮으시면 오늘 저랑 술 한잔 어떠세요?"
"술이요?"
"네. 늘 혼자 이 공원을 걸었는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서 술 한잔하고 싶네요"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하고......."
"술 한잔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싫으시면 그만 두시고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럼 가죠. 이제 금방 어두워질꺼에요"
여인은 벤치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여인이 뒤로 돌아 보니 노신사는 너무도 천천히 따라 오고 있었다
여인은 잠시 멈추어 기다렸다
노신사가 여인의 앞에 오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또 노신사의 걸음이 늘여지자 여인의 노신사의 팔장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순간 노신사의 몸이 경직되었지만 금방 풀어졌다
여인에게서 전해지는 장미향이 노신사의 코에 닿았다
자신도 모르게 여인을 한번 바라 보았다
여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다
어디고 가는지도 모르고 노신사는 여인이 걷는 곳으로 갔다
공원을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여인은 자신의 차에 자동차 키를 꽂았다
시동을 걸고 차을 달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음악 좋아하세요?"
"네"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모든 음악을 다 좋아해요"
"그러세요. 그럼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그러죠"
여인은 음악을 틀었다
조금 있으니 음악이 차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4곡쯤 들었을까 여인은 어느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노신사는 아무말없이 여인과 차에서 내렸다
여인은 노신사를 안내하듯이 조금 앞에 서서 걷고 있었다
노신사가 오는지를 확인하면서
실내로 들어가니 그곳은 조선시대에 온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신사는 여인의 안내로 안쪽으로 들어 갔다
방으로 들어가니 8폭 병풍에 보료가 있었다
노신사는 계속해서 놀라고 있었다
여인은 노신사에게 보료를 권하고 자신을 방석에 앉아 환하게 웃었다
조금 있으니 종업원이 들어 왔다
개량 한복을 입은 종업원은 작은 찻상에 두잔의 차를 들고 들어 왔다
"손님. 먼저 차 한잔 드시고 주문 하세요"
종업원이 나가고 여인과 노신사 사이에 차가 놓여졌다
"이곳은 제가 잘 아는 곳이에요. 돈 걱정 마시고 드시고 싶으신거 드세요. 대신 오늘 제 술 친구가 되어 주시는 거에요"
"그래도......"
"아니요. 제가 선생님께 술 마시자고 했잖아요. 여긴 식사도 가능한 곳이니까 먼저 식사부터 할까요? 여기 한식이 일품이에요. 그럼 제가 알아서 주문할께요"
여인은 노신사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주문을 했다
차 한잔을 다 마실쯤 식사가 들어 왔다
교자상에 하나가득 음식이 담겨져 있었다
노신사가 전혀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식사가 끝나자 음식이 정리되면서 술상으로 바뀌었다
여인은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 놀라셨죠?"
"조금......"
"술한잔 받으세요"
여인은 노신사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노신사에게 내밀었다
"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시죠?"
"........"
"오늘이 친구가 세상을 버린 날이에요. 그 친구와는 자주 그 공원엘 갔어요. 추억이 아주 많은 곳이죠. 그래서 친구를 그곳에 뿌렸어요. 친구의 유언이기도 했구요. 늘 함께 했던 곳이기도 했기에......그 친구 지금쯤 하늘에서 편할까요?"
"그랬군요"
"선생님은 왜 그곳에 가셨나요?"
"난 오늘 정년퇴직을 권고 받았어요. 아직 학교를 마쳐야 하는 자식도 있는데.... 아내에게 뭐라 말 할수 없어서....."
"그래서 담배만 피우셨군요"
"그런 셈이지...."
"선생님 우리 술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해요. 자 건배.."
여인은 술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따르고있었다
노신사는 술잔을 내려놓고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코트를 벗은 여인은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다 살아나는 니트 원피스였다
술기운을 빌어 바라본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젊음이 그대로 묻어 나고 있었다
옅은 화장을 하고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흘리며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노신사는 한동안 여인의 모습에 취해 있었다
"선생님 그만 보세요. 그러다 제 몸에 구멍이라도 나겠어요"
씩하고 웃는 여인은 또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멀쓱해진 노신사도 술잔을 비웠다
"선생님 댁은 어디세요?"
"우리집이요?"
"네 선생님 댁이요?"
"난 잠실 살아요. 그러는 아가씨는?"
"그러세요. 전 전.........."
여인은 말을 잇지 않았다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이제 그만 마셔요.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걱정되세요?"
"그래요. 너무 많이 마시고 있잖아요"
"네 그러죠 . 그럼 우리 나갈까요"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 섰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여인은 멀쩔했다
전혀 술을 안마신 사람처럼 보였다
코트를 들고 먼저 나간 여인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노신사는 서둘러 카운터로 갔다
"제가 계산하죠. 얼마죠?"
"이건 반칙이에요. 제가 계산해요"
여인은 노신사를 카운터에서 밀어내고 계산을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카운터 직원과 무슨 말을 나누고는 노신사가 있는 쪽으로 왔다
"이거 초면에 ......"
"미안하세요?"
"....."
말을 못하는 노신사가 재미있다는 듯 여인은 웃고 있었다
"정 미안하시면 커피 한잔 사주세요. 여기서 나가서 조금 걸으면 괜찮은 커피숍이 있어요"
"그럼 그럴까요"
여인은 먼저 앞장서서 밖으로 나갔다
노신사는 계속해서 여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가웠다
여인은 코트를 여미지도 않고 걸었다
노신사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인의 곁에 섰다
"바람이 차갑죠? 조금 걸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춥지 않아요. 코트를 여미지도 않고....."
"지금 열이 나서 바람이 너무 시원해요"
여인이 안내하는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였다
과연 이런곳에 차를 마실 곳이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어둠이 길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서러웠다
노신사는 자신의 울부짖음인 듯 싶어 서글펐다
"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아무 생각도..."
말끝을 흐리고 있는데 여인이 노신사 앞으로 다가섰다
노신사는 어둠속에서 다가서는 여인을 바라 보았다
"겁나시죠? 지금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 정말 차를 마실곳이 있는지...."
노신사는 고개만 끄덕였다
여인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여인은 아무말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노신사도 여인을 따라 걸었다
어둠속에서 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이 나오자 걷기가 좋았다
한참을 걸으니 정말 찻집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생각보다 안은 넓었고 손님도 많았다
이런곳이 처음이라 노신사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인은 그런 노신사을 자리에 안내했다
집에 있는 쇼파보다 더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의자였다
여인은 코트를 벗어 놓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노신사는 여인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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