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28) 이대봉(李大鳳, 예천통명농요의 기능보유자)
이대봉(1921-1994)은 용문면 사부리에서 태어나 예천읍 통명리 44번지로 옮겨 살았다. 하산의 맏아들인 이대봉은 서당이나 학교에 다닌 적은 없고, 오로지 농사만을 지었다.
1985년 12월 1일 예천통명농요(醴泉通明農謠)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4-1호로 지정되자, 어려서부터 익힌 노래 솜씨가 남다르다 하여 매김소리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대봉은 옛날처럼 어디서나 노래 부를 자리가 있으면 달려갔고, 초상이 나면 상여소리를 해주었다.
이대봉은 풍물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쇠 솜씨를 물려받았고, 통명의 윤주만으로부터 통명쇠를 익혔다. 그러나 노래는 들에서 스스로 익힌 것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지도 모르면서 불렀다."라는 이대봉에게는 노래가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예천통명농요는 19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5호(1981)로 지정되었다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대봉과 이상휴(李相烋)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7명의 전수자와 이수자가 있는데, 공연을 할 때에는 통명리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된 농요 요원 40명이 함께 움직인다. 전라도의 농요는 주로 여자들이 부르는데, 통명농요는 남자들만 부른다.
모심을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 논을 매면서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상사뒤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 '에이용소리', 논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타작할 때 부르는 '봉헤이' 등 8가지로 구성된 예천통명농요는 'ㅎ'을 강조해서 경쾌하고 힘이 있다.
이 통명농요의 선소리꾼에다 무리의 리더격인 쇠잽이인 이대봉은 꾕과리를 칠 줄 아는 젊은이가 없어 걱정하다가 타계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1985년 12월 1일 예천통명농요(醴泉通明農謠)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4-1호로 지정되자, 어려서부터 익힌 노래 솜씨가 남다르다 하여 매김소리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국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대봉은 옛날처럼 어디서나 노래 부를 자리가 있으면 달려갔고, 초상이 나면 상여소리를 해주었다.
이대봉은 풍물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쇠 솜씨를 물려받았고, 통명의 윤주만으로부터 통명쇠를 익혔다. 그러나 노래는 들에서 스스로 익힌 것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지도 모르면서 불렀다."라는 이대봉에게는 노래가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예천통명농요는 19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5호(1981)로 지정되었다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대봉과 이상휴(李相烋)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7명의 전수자와 이수자가 있는데, 공연을 할 때에는 통명리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된 농요 요원 40명이 함께 움직인다. 전라도의 농요는 주로 여자들이 부르는데, 통명농요는 남자들만 부른다.
모심을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 논을 매면서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상사뒤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 '에이용소리', 논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타작할 때 부르는 '봉헤이' 등 8가지로 구성된 예천통명농요는 'ㅎ'을 강조해서 경쾌하고 힘이 있다.
이 통명농요의 선소리꾼에다 무리의 리더격인 쇠잽이인 이대봉은 꾕과리를 칠 줄 아는 젊은이가 없어 걱정하다가 타계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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