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차마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작성자관리자 @ 2004.09.29 16:53:20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 하나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글에는 세상이 삶이 깃들어 있다는 관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최근 접한 어느 글보다 감동을 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대로 버리긴엔 너무나아까워 여기에 남겨봅니다.(이 글은 예천군농민회에서 최근에 배포한 전단 내용에 실린 시를 퍼온 것입니다.)

 

                        차마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농사꾼은 하늘을 닮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땅은 정직하여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을 늘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이웃과 모나지 않고 세상을 둥글 둥글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세상살이라 믿어왔습니다.

농사가
세상의 큰 근본이라는 말을 의심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풍파속에
농사는 천덕꾸러기로 곤두박질 쳐지고
농사꾼은
시대의 끄트머리나 헤메는 얼간이가 되었습니다.

세계화가, 신자유주의가, WTO가, 개방경제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웃음과 보람을 빼앗고
몇몇의 풍요와 독점으로 모이는 것을
거친 손마디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청도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1만 5천년 전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논이 가져다주는 이런 저런 효과를
공익적, 혹은 비교역적 기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땅의 문화와 전통중에
나락농사와 무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추석을 앞둔 9월 22일 예천군 지보 신풍들에서
농민들이 토실토실 알이 배기는 나락을 짓이겼습니다.

첫 수확한 오곡백과를 차려 놓고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우리의 큰 명절을 앞두고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따가운 볕을 며칠만 더 보면
겉껍질이 툭툭 터질만큼 알알이 실해질 그 나락을
우리 농사꾼 손으로 깔아 뭉겼습니다.

이른 봄 찬물에 나락씨를 담그고
싹이 잘 날까
가뭄에 지실이 드지 않을까
나락속에 피가 많지나 않을까
잦은 비에 도열병이나 생기지 않을까
8월 염천 자마구 필 때 행여 비가 많이 오지 않을까
9월 이삭 무거워지는데 큰비 달고 오는 폭풍이나 오지 않을까
애면 글면 자식같이 지은 농사였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실해진 만큼 고개를 숙이는 나락을 진창에 파묻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우리 농사군의 처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리 저리 짓이겨 놓은 나락이
바로 농사꾼의 처지이기에
가슴이 두 번 세 번 먹먹했습니다.

차마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차마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하늘을 믿고 땅에 의지한 한평생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차마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마을소식

마을이야기 [1103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ycg.kr/open.content/geumdangsil/news/talk/?i=124530&p=1103 입니다.

이 QR Code는 현재 보시는 <마을이야기 [1103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