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인물25) 권별(權鼈, <해동잡록> 14권을 저술한 학자)
권별(1589-1671)은 용문면 죽림리 대수 마을 출신으로, 자는 수보(壽甫), 호는 죽소(竹所), 본관은 예천, 문해(文海)의 외아들이다. 세 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학문 연구에 전심 전력하여 성리학과 역사학에 통달하였다.
권별은 단군조선 이래 고려 말까지의 왕실의 일들과 조선 광해군 이전까지의 인물 1,074명에 대한 전기를 집대성한 <해동잡록(海東雜錄)>14권을 편찬했다. 이 <해동잡록>의 일부가 조선 후기에 출판된 <대동야승>에 수록되어 있다.
죽림리 대수 마을 종가에 보존되어 있는 원본에는 인물들의 전기 뿐 아니라 유명한 시문, 명언, 선행을 널리 수록하였으며, 성리학, 문장, 훈장, 절의 등도 많이 수록하여 인물들의 역사적 비중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가사 중에는 한글로 엮은 것도 많아서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외에 그림, 의학, 농업 등의 전문가들까지도 광범위하게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들 전기 중에는 가능한 한 그 기록의 고증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출전을 일일이 곁들여 기록하였다.
<해동잡록>의 제1권에는 단군, 기자, 위만조선과 한사군, 삼한, 신라, 고구려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는데, 삼한 이전은 기사본말체, 신라 이후는 편년체로 서술하였고, 제2권은 백제와 고려 전반기의 역사를 편년체로 썼고, 제3권은 고려 후반기의 역사와 가야, 후삼국, 말갈, 거란, 몽고, 일본 등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하였다.
제4권부터 제13권까지는 각 시대별로 인물들의 전기를 기록하였으며, 제14권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반기까지의 효자, 효녀, 효부, 열녀 등의 전기가 서술되었다.
권별은 수직으로 용양위 부호군에 올랐으며, 병자호란(1636) 때 의병으로서 싸웠다. 무덤은 예천군 화장(花庄, 現 聞慶市山北面) 탑골에 있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권별은 단군조선 이래 고려 말까지의 왕실의 일들과 조선 광해군 이전까지의 인물 1,074명에 대한 전기를 집대성한 <해동잡록(海東雜錄)>14권을 편찬했다. 이 <해동잡록>의 일부가 조선 후기에 출판된 <대동야승>에 수록되어 있다.
죽림리 대수 마을 종가에 보존되어 있는 원본에는 인물들의 전기 뿐 아니라 유명한 시문, 명언, 선행을 널리 수록하였으며, 성리학, 문장, 훈장, 절의 등도 많이 수록하여 인물들의 역사적 비중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가사 중에는 한글로 엮은 것도 많아서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외에 그림, 의학, 농업 등의 전문가들까지도 광범위하게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들 전기 중에는 가능한 한 그 기록의 고증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출전을 일일이 곁들여 기록하였다.
<해동잡록>의 제1권에는 단군, 기자, 위만조선과 한사군, 삼한, 신라, 고구려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는데, 삼한 이전은 기사본말체, 신라 이후는 편년체로 서술하였고, 제2권은 백제와 고려 전반기의 역사를 편년체로 썼고, 제3권은 고려 후반기의 역사와 가야, 후삼국, 말갈, 거란, 몽고, 일본 등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하였다.
제4권부터 제13권까지는 각 시대별로 인물들의 전기를 기록하였으며, 제14권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반기까지의 효자, 효녀, 효부, 열녀 등의 전기가 서술되었다.
권별은 수직으로 용양위 부호군에 올랐으며, 병자호란(1636) 때 의병으로서 싸웠다. 무덤은 예천군 화장(花庄, 現 聞慶市山北面) 탑골에 있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