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 유리보전과 풍경 기다림을 파는 할머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읍내로 나왔다. 상점 문이 하나 둘씩 열리고, 즐비한 상점들 틈 약간 후미진 곳에서 좌판을 펼치는 이가 있었다. 허리는 반쯤 구부러지고 머리에 허연 서리가 앉은 팔십 대 노인이었다. 머리에 한 아름 이고 온 보따리를 펼쳐 토마토, 복숭아, 풋고추, 상추, 오이, 콩 등 채소와 과일 몇 가지를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늦은 오후, 일을 보고 절에 들어가는 길에 아침에 지났던 그 길을 다시 지나게 되었다. 조용한 아침의 모습과는 다르게,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사람 소리와 틀어놓은 노랫소리로 어수선했다. 문득 아침에 보았던 할머니가 궁금해 두리번두리번 살피니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좌판의 물건들은 조금 준 듯 만 듯했으며, 할머니는 다가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연히, 그저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종일 저렇게 기다리셨을 테지, 눈에 띄지 않는 저 구석 자리에 앉아 종일 기다리셨을 테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많이 파셨어요?" "네, 스님." 할머니가 빙그레 웃는다. "풋고추하고 상추가 아주 싱싱해 보이네요." "조금 드릴까요?" "네. 여기 콩하고 오이도 아주 좋네요."
할머니는 나무 껍질처럼 거친 손으로 무릎을 힘껏 누르며 일어서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헌 봉지를 펼쳐 이것저것 한가득 담았다. 그러면서 옆의 바구니에 담긴 복숭아 가운데 가장 큰 놈을 골라 바지춤에 쓱쓱 닦아 내 손에 꼭 쥐어준다. 그 손길이 참으로 따뜻했다.
우리절 법당뒤 텃밭에도 올 여름 농작물이 풍년이다. 풋고추, 상추, 오이, 토마토, 콩…. 오늘 내 장바구니를 보면 절식구들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허나 오늘 내가 그 할머니에게서 산 것은 풋고추와 상추도 아니고, 오이와 콩도 아니다. 바로 기다림의 마음이다. 누구 하나 오는 이 없어도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한없이 기다릴 줄 아는 그 마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런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살기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그 할머니의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닮았으면 한다.
할머니가 쥐어준 복숭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그거 참 달고 맛있구나.
-좋은 생각 2004년 9월호- 지현스님(청량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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