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21)김정연(金正演, 3.1운동 때 만세 부른 건국 공로자
김정연(1891-1958)은 용문면 출신으로, 3.1운동(1919) 때는 안동군 임하면 오대동에 살고 있었다. 같은 동리의 손영학, 김정익, 장두익 3명과 함께 의거를 모의했다. 바로 이웃 길안면의 천지동(泉旨洞)에서 장날을 택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정하고 준비를 했다.
'대한독립만세'라고 적은 큰 깃발과 대형 태극기를 만들었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을 포섭하여 약 30명을 장날 시위의 중심 대원으로 삼았다. 이러한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천지동에 있는 일본 경찰주재소의 삼엄한 주시를 받았다. 3월 21일, 길안면 소재지인 천지동에 장이 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정연 등은 태극기와 시위 도구를 감추어 장에 들어갔다.
오후 5시쯤, 김정연 등은 만들어온 큰 깃발을 시장 가운데 세우고, 큰 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장꾼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군중 약 400명은 김정연의 지휘 아래 우선 길안면사무소로 갔다. 면장과 면서기들을 보고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했다. 주재소의 일본 경찰이 달려와 막자, 데모 대원들은 흥분하게 되었다. 돌을 던지어 면사무소의 유리창들이 깨어지고, 출입문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데모대원들은 오후 7시 경에 경찰주재소를 포위하고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일본 경찰의 저지가 무도해지자, 데모대에서 돌이 날았다. 주재소의 유리창이 깨어졌다. 일본 경찰이 총을 쏘자,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후퇴한 후 밤 12시쯤 되어 해산하였다.
이 사태가 있은 후 김정연 등은 잡히어 대구복심법원에서 5년형의 언도(1920)를 받고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건국포장(1977)과 애국장(1990)을 추서하였다.
<장병창 예천 신문 논설위원>
'대한독립만세'라고 적은 큰 깃발과 대형 태극기를 만들었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을 포섭하여 약 30명을 장날 시위의 중심 대원으로 삼았다. 이러한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천지동에 있는 일본 경찰주재소의 삼엄한 주시를 받았다. 3월 21일, 길안면 소재지인 천지동에 장이 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정연 등은 태극기와 시위 도구를 감추어 장에 들어갔다.
오후 5시쯤, 김정연 등은 만들어온 큰 깃발을 시장 가운데 세우고, 큰 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장꾼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군중 약 400명은 김정연의 지휘 아래 우선 길안면사무소로 갔다. 면장과 면서기들을 보고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했다. 주재소의 일본 경찰이 달려와 막자, 데모 대원들은 흥분하게 되었다. 돌을 던지어 면사무소의 유리창들이 깨어지고, 출입문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데모대원들은 오후 7시 경에 경찰주재소를 포위하고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일본 경찰의 저지가 무도해지자, 데모대에서 돌이 날았다. 주재소의 유리창이 깨어졌다. 일본 경찰이 총을 쏘자,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후퇴한 후 밤 12시쯤 되어 해산하였다.
이 사태가 있은 후 김정연 등은 잡히어 대구복심법원에서 5년형의 언도(1920)를 받고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건국포장(1977)과 애국장(1990)을 추서하였다.
<장병창 예천 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