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인물20)박주상(朴周庠, 을미사변 때 예천군 의병대장)
작성자관리자 @ 2004.08.24 19:23:36
박주상(1831-1908)은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출신으로, 자는 양선(養選), 호는 남천(南泉), 본관은 함양, 필령(弼寧)의 셋째 아들이다. 유학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도 조예가 깊어 예천 유림의 존경을 받았다. 을미사변 후, 박주상은 사재를 털어 의병을 모집(1896)하였는데, 모여든 의병의 수가 수 백 명이나 되었다. 박주상은 늙은 몸에도 불구하고 예천군의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부서를 정하고, 대열을 정돈하여 밤낮으로 훈련을 거듭하여 왜적의 정보를 알아내고, 한편으로는 안동의 김하락, 문경의 이강년 등과 연락하여 북진하기도 하였다.

박주상이 선봉에 서니, 의병들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간교한 무리들을 기필코 섬멸하고 국권을 되찾겠다."라고 하면서 고향인 예천을 떠나 용궁으로 진격하는 도중 친일파와 왜적을 무찌르고, 용궁에서 하룻밤 들에서 자고 다음날 함창을 지나 상주에 다달았다.

이 때 고종 임금이 의병을 해산하라고 명령을 하니, 박주상은 놀랍고 분하고 통탄스러웠다. 부득이 예천으로 돌아오니 뒷날을 기약하고 의병들을 해산하였다. 그러나 박주상은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던 중 예천 군민들의 구명 운동으로 석방되었다. 출감 후에도 청년들과 장년들에게 항일 정신, 민족 정신 함양에 전력하였다.

일제는 다시 을사조약(1905)을 강제로 체결하니, 박주상은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이미 70여 세의 늙은 몸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하였다.
 
무덤은 용문면 원류리 마을 뒷산 비석골 장등에 있는데, 문공부에서 유적으로 등록하였다. 당시의 유림들이 박주상의 <창의록>을 적어 예천향교에 보관하였고, 정부에서는 박주상의 공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제55107호, 1982)을 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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