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권동하權東河,전국주조협회장을역임한 경북도의회의장
| 권동하(1905-1987)는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으로, 본관은 예천이다. 경북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예천공립보통학교의 훈도(現 敎師)로 부임한 이래, 대구 덕산국민학교 등에서 13년 간 교단 생활을 하다가 1940년에 그만두고, 예천주조회사 취체역(取締役)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권동하의 동생 권상하(權尙河) 역시 대구사범학교 심상과(尋常科) 5년제를 마치고 진보국민학교를 거쳐 함창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제 말기에 언론계로 전환하여 해방 전후 7년 간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다가 1947년 경에 경북 경찰계에 투신하여 치안국 근무를 거쳐 경남 함안, 거제, 삼천포 경찰서장, 경남경찰국 공보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주 경찰의 지표가 된 바도 있다. 이 두 형제는 교단 생활을 할 적에 일제로부터 사상이 나쁘다는 이른바 불령(不逞) 교원이란 렛델이 붙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을 배척하는 사상을 남모르게 학생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권동하는 경북도의원에 예천에서 입후보하여 당선(1952)되었고, 그 후(1956)에도 또다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으며, 문교사회분과위원장을 거쳤으며, 부의장(1957), 의장에까지 이르러 눈부신 활동을 하였다. 권동하는 인격이나 식견, 그리고 수완이 탁월하여 거짓을 물리치고 옳은 것을 밝혔다. 그리고 항상 조용하면서도 믿음직한 인상을 세차게 풍겨주는 묵중하고 품위있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한편, 주조 사업에도 계속 전념하여 전국소주공협회장, 전국주조협회장을 역임하였고, 세정(稅政)협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무덤은 예천읍 통명리에 있고, 맏아들 권두영(權斗榮, 1929-1993) 박사는 고려대 교수를 거쳐 사민당 당수를 역임하였으며, 넷째 딸인 권영자(權英子, 1937- )는 동아일보 기자, 한국여성개발원장을 거쳐 정무제2장관(1993-)으로 활동한적 있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