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17)권원하(權元河, 항일운동으로 일생을 마친 독립운동가)
작성자관리자 @ 2004.08.16 21:01:44
권원하(1898-1936)는 용문면 하금곡리 471번지 출신으로, 자는 도장(道壯), 호는 중산(重山), 본관은 예천, 영진(永鎭)의 셋째 아들이다. 왜관국민학교, 부산제2상업고등학교(1919)를 졸업하고, 3.1운동 때 선봉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제4기생으로 졸업(1920)한 후 독립운동 자금 및 독립군 모집의 임무를 띄고 귀국하여 암약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 (1921)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출감 후에는 왜적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애국심은 더욱 불타올라 서울 등지로 피신해 가며 독립 운동을 계속하면서 안재홍, 여운형 등과 친하여 서로 만나 국권을 찾으려고 애썼다. 안재홍은 용문면 성현리 병암정(屛岩亭)에서 숙식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권원하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여 용문사, 명봉사 등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가 예천군내 청년대회를 개최(1927.6)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는 등 구국 운동을 하였다. 그 외 교직원 사건, 소작인 사건, 민중소요 사건, 대동국권회복단 사방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의 선봉에 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권원하가 독립 운동에만 전념하는 동안 많은 가산은 모두 탕진되고, 부인 김재수(金在洙) 등 가족들은 일본 경찰의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강원도 오지로 도피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였다.

권원하의 무덤은 용문면 덕신리 큰골 앞산에 있고, 건국 공로로 대통령 표창(1977)이 추서되었고, 하금곡리 동구(洞口)에 기념비(1979)가 세워졌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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