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박정시(朴廷蓍, 벼슬에서 물러날 때 거문고 1개 뿐인 청백리)
작성자관리자 @ 2004.08.13 20:51:10
박정시(1601-1672)는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출신으로, 자는 길부(吉孚), 본관은 함양, 영(瑛)의 아들이다. 1623년(인조 11)에 형 정협과 함께 생원이 되고, 1639년(인조 17)에 식년 문과에 을과 2위로 용문면 구계리 사람 김주와 함께 급제하였다.

도사와 형조 정랑을 거쳐 결성, 영암, 태안 등 3군의 군수를 역임하면서 청렴 결백하였다. 특히 태안(泰安) 군수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날 때에는 거문고 1개와 책 1부만 가지고 귀향하였다. 박정시는 성격이 강직하고 담력이 세며 의협심이 강했다. 또한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청렴 결백하여 청백리 책에 실리었다. 무덤은 미흘산 유좌(彌屹山酉坐)에 있고, 뒤에 좌승지(1745)에 증직되었다.

박정시가 태안 군수로 부임하던 첫 날 밤에 처녀 귀신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지금부터 5년 전 태안 군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녀의 미모를 탐낸 군 관리 한 사람이 소녀를 겁탈하고 난 다음 후환이 두려워서 소녀의 목을 칼로 찔러 죽여서 동헌 앞에 서있는 수 백년 묵은 저 오동나무 속에 거꾸로 집어넣어 오늘에 이르렀으나, 소녀는 원귀가 되어 있으니 소녀의 원수를 갚아주소서"하는 것이었다.

박 군수는 이튿날 소녀의 장사를 지내주는 한편, 범인을 고발하여 처형 받도록 하였다. 범인을 처형하던 날 밤에 박 군수가 꿈을 꾸니, 소녀가 나타나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그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이 거문고는 박 군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소리를 내어서 미리 알려주곤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은 이 거문고를 자명금(自鳴琴) 또는 태랑금(泰娘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구한말에 이 곳에 사는 법부대신 이유인이 빌려 갔다가, 잘못 다루어 줄이 끊어져 스스로 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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