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향수 여행 - 전상준
작성자관리자 @ 2004.08.09 02:08:31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출향인들은 누구나 조금씩 향수병을 앓고 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와 함께 ‘깔꾸리 식당’에서 향수를 달래 본다.
    이 식당의 음식이 다른 식당보다 맛이 좋다거나, 실내 장식이 잘 되어 유명하다거나,
    아니면 친구와 인연이 있거나, 나와 어떤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겨울비를 맞으며 걷다가 식당 이름에 마음이 끌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에게 농부터 시작했다. 왜 상호를 “ `깔꾸리 식당'이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깔꾸리로 무엇을 긁듯 돈 한 번 긁어모아 볼라고…” 하며 자신의 신세 한탄을 섞어
    가며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하고는 엄청 많이 빗나가고 있다.
    깔꾸리는 대쪽이나 굵은 철사 등의 끝을 갈고리지게 휘어, 부챗살 모양으로 펴서
    긴 자루를 달아 낙엽이나 볏짚 보릿짚의 검불, 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잎 따위를
    긁어모으는 데 쓰는 기구인 `갈퀴'의 사투리다.

    `깔꾸리 식당' 정말 이름만 보아도 정겹고 고향 생각이 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 버는 데는 참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향수를 자극하여 자기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 시내를
    나갔다가 `부뚜막삼겹살숯불갈비'란 기다란 상호를 달고 있는 식당을 본 일이 있다.

    `부뚜막'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음식을 만드는 곳이란 생각보다는
    고향집 부엌이 먼저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 오육십 년대는 나무를 때 음식을 만들던 때라 부엌문과 벽이 연기에 그을려
    온통 시커멓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여기 저기 쳐져 있었다. 부뚜막도 흙으로 되어
    있어 송판을 깔아 사용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부뚜막'이란 말이 나와 무엇
    하던 곳이냐고 물으니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싱크대'를 아느냐는 말에는 많은
    학생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곳’이란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무들과 놀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찾으면 언제나 부엌에 있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청해도 부엌에서 가져 왔다.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릴 때 추위를 가장 빨리 녹일 수 있는
    곳도 부엌이다. 음식을 익히기 위해 불 지핀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언 손과
    볼을 녹이고 있을 때, 언제 넣어 두었는지 아궁이 속에서 구운 고구마를 내어 줄 때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옛 고향집 부엌을 생각나게 하는 `부뚜막'은 나이가 든
    출향인들께 향수를 자극해 식당을 찾도록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으로 나는 어릴 때 고향에서 갈퀴로 나무하던 생각을 하며, 주인의 이야기 속에서
    땔감이 귀해 겨울철만 되면 방천 둑이나 동네 어귀의 동산에서 말라버린 풀 검불을
    긁어모으던 일, 동네 방풍림이나 먼 산의 키 큰 소나무 밑에서 솔가리를 긁어모으던 일,
    아니면 나무를 하러가서 친구들과 들과 산을 누비며 뛰어 놀던 재미있는 추억담이라도
    기대했었는데 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창밖에는 겨울비가 계속 내린다.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내밀고 차가운 빗줄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친구와 나는 어릴 적 겨울에 땔감을 장만하기 위해 갈퀴를 지게에 달고
    나무를 하러 가면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얼음도 지치고, 말타기 놀이도 하고, 도랑에서
    돌멩이를 모아 놓고 모닥불을 피우던 옛날이야기를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데 왜 이렇게 즐겁고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겨울비를 맞고 있는 나뭇가지 끝에서 벌써 봄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번 설 명절 때도 많은 사람들이 힘든 길이지만 기다려줄 정다운 얼굴들을 생각하면
    고향을 찾았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있고, 피 붙이인 형제자매가 있다. 그리고 친지나
    어릴 적 친구가 있다. 어느 사이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너 나
    할 것 없이 좀 더 잘 살아 보겠다고 고향을 버리고 모두 떠난 텅 빈 곳일 지라도 거기에는
    산이 있고 내가 있어 예부터 고향산천이란 말이 생겼다.

    고향을 떠나 도시를 찾으면 부와 행복이 보장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오늘의 고통과 어려움만 참으면 내일은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겨울비를 바라보며 떠돌이 같은 내 삶의 모습을
    재발견한다. 오늘의 삶이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처럼 어느 머나먼 기억 속에 쟁여질
    날이 올까? 어느 머나먼 행간 속에 기록이나 될까?

    오늘도 향수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며, 내 마음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며 안식처인 추억
    속의 고향 산천, 예천을 헤맨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향 생활 속에서 남에게 속는
    일보다 자신에게 속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깔꾸리 식당'에서 친구와 함께 향수 여행을
    하며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전상준, 풍양면 출생(대구시 거주), 고령중 교사, 대구문인협회 회원,
    문예한국 신인상(수필) 당선>

    ▣ 편집자 주 : 예천 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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