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박종린(朴從鱗, 5형제가 과거 급제한 용문 함양 박씨 입향조)
작성자관리자 @ 2004.08.07 19:04:01
박종린(1496-1553)은 용문면 상금곡리 사람으로, 자는 자룡(子龍), 본관은 함양, 눌(訥)의 다섯째 아들, 금당실 사람 문숙손(文叔孫)의 사위이다.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고, 1532년(중종 27)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예문관 검열로 옮기고, 승정원 주서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 저작, 박사(1534), 수찬(1535)으로 승진을 거듭하였다.

그 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쳐 다시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1536)로서 세자시강원 사서 및 문학을 겸직하면서 세자에게 글을 가르쳤다. 또 사간원 헌납을 거쳐 이조 정랑에까지 벼슬이 이르는 동안 경연의 시독관(1536)을 겸직하여 중종 임금의 정치 자문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권세가 김안로의 횡포가 심하여 벼슬에 뜻이 없던 차에 김안로가 사형(1537)되자 벼슬을 그만 두고(1538), 용문면 상금곡리에 숨어서 정신 수양과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무덤은 용문면 원류리 희이동(希夷洞) 형제봉 아래에 있고, 상금곡리의 추원사(追遠祠)와 영사정(永思亭)에 제향되었다.

박종린은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거린(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그리고 종린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병조 참판에 추증(1533)되기도 하였다. 박종린은 경연의 시독관으로서 중종 임금께 사림파의 입장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아 낼만큼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

1537년(중종 32) 1월 21일에 박종린이 임금께 아뢰기를, "궁궐의 일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궁궐의 규율이 엄하지 않은 소치라고 생각됩니다. 또 제가 듣기로는 이 달 15일에 어떤 사람이 개성의 어느 절에서 큰 불교 행사를 하였다 하는데, 이도 단속이 해이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또 무당이 사대부의 집에서도 거리낌없이 성행하니, 이런 일들은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아뢴 말이 지극히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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