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정윤우(丁允佑, 뛰어난 문장에 중국 황제가 감탄한 관찰사)
작성자관리자 @ 2004.08.02 00:00:58
정윤우(1539-1605)는 용문면 성현리 복천(福泉) 마을 사람으로, 자는 천석(天錫), 호는 초암(草庵), 본관은 나주, 응두(應斗)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에 생원과 진사가 되고, 1570년(선조 3)에 식년 문과에 예천 사람 김대명, 노전, 김복일과 함께 급제하여 동래, 여주, 광주(光州) 등지에 암행어사로 나갔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1등 공신에 등록되었다.

그 후 성균관 대사성(1596),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1597), 홍문관 직제학에 올랐다가 정유재란(1597.7)이 일어나자, 종2품인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서 도지사가 되었다.

이 때 선조 임금이 이르기를, "모든 대신들이 그대를 추천하여 왜적을 막으라고 하니, 그대 아버지가 나의 선왕인 명종을 도왔 듯이 그대도 대를 이어 국가에 충성하고... 충청도의 군사권을 그대에게 위임한다."라고 하였다. 정윤우의 아버지는 명종 때 의정부 좌찬성 벼슬을 하였는데, 14살에 진사가 될만큼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성격이 무겁고 덕성스러우며 아량이 넓었고, 항상 검소한 생활을 하여 벼슬이 높아도 겨울에 털옷을 입지 않고 아들들에게 노동을 시켜 자립심을 길러주고 학문보다 근면 성실이 앞선다고 가르쳤다.

정윤우는 그 후 호조 참의, 홍문관 부제학, 강원도 관찰사, 승정원 도승지, 병조 참의를 거쳐 중국 명 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 때 명 나라 신종 황제가 정윤우의 뛰어난 문장을 가상히 여겨 술잔(柳葉盃) 6개를 특별히 하사하였다. 이 술잔을 후손들이 가보로 보존하여 오고 있다.

정윤우는 1601년(선조 34)에 벼슬을 그만 두고, 복천 마을로 와서 여생을 보냈다. 마을 서남쪽 둥글게 생긴 곳에서 조카 호양(好讓), 호서(好恕)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즐겼는데, 이 곳을 '어사대(御使臺)'라고 한다. 정윤우가 타계하자, 선조 임금은 슬퍼하면서 제문(祭文)을 내리고, 이조 참판에 증직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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