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실에 라디오중계소를 알고 계십니까?
작성자관리자 @ 2004.07.30 21: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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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용문이 풍성한시절이었다. 용문초등학교 재학생은 1500여명을 넘나들었고,
학교에는 맨앞에 콘크리트 교사한동과 뒤에 목조건물세동이 있고, 그뒤에 교장선생님의
사택이 있고, 양호실이 있고, 화장실이 있었다.
그 양호실옆에 작은 발전실과 라디오 중계실이 있었다. 가끔 금당실 동민에게
알립니다는 안내방송도 나왔는데 이시절에 즐겨 나왔던 노래가 년가이다.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서라 새살림 일깨우는 보람에 섰다.
새로운 뜻 부푼 꿈을 일손에 모아 가난을 물리치자 행복을 심자.
일하는 즐거움을 어디다 비기랴 일하자 올 해는 일하는 해다...
금당실 400여 가호에는 감나무와 살구나무를 타고 전기줄아닌 라디오줄이 이리로
저리로 연결되었고, 조금은 산다는 집에는 서피카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아침7시부터 9시까지 점심12시부터 1시까지 오후 4시반부터 저녁 아홉시 까지는
여기를 통하여 금당실에 노래와 뉴스와 라디오 연속극들이 전해 지곤하였다.
그날도 4시반에 당직 (얼마전에 부산에서 작고하신 이재춘선생님)선생님이 라디오를
켜야 하는데 그날따라 볼일이 있으셔서 6학년1반 급장(그금은 반장인가) 남촌의 팔로형
(지금은 대구에서 인형제조공장 운영)에게 4시반에 스위치 올리는것을 당부하고 가셨었다.
놀다보니 또 시계가 없었으니 늦었다면서 학교까지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같이
라디오 중계소엘 가서 스위치올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렇게 신기할수가 없었다.
그시절에 다년간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이한표선생님과 이일영선생님을 지금도 가끔 가끔
생각나는데 이한표교장선생님은 풍양으로 전근가셔서 재직중에 유명을 달리하셨고,
이일영교감선생님은 근항을 알수 없다.
그형은 졸업후에 라디오수리통신강의록으로 공부도 하였고, 소리안나는 서비커수리도 나섰는데
수리란 어느곳에서 연결되는 라디오줄이 끊어 졌는가를 찾아서 연결하는 것이었다.
2~3년후에는 서서히 금당실주민들이 라디오를 구입하였고 수효가 줄어서, 서촌장터의 박중열씨댁
으로 중계소가 옮겨 갔다가 아마1969년도에 중계소가 문을 닫았고 얼마후 (1970년정도) 용문에도
흑백텔레비젼이 보급되었다. 1968년에는 금당실에 전기가 들어온 해이다.
지금 세대들은 아마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박 재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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