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인물5]박홍린(朴洪鱗, 5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예조참판)
작성자관리자 @ 2004.07.28 21:02:04
박홍린(1482-1555)은 용문면 능천리 능내(能內) 마을 사람으로, 자는 자운(子雲), 호는 용암(龍庵), 본관은 함양, 눌(訥)의 셋째 아들이다. 1510년(중종 5)에 진사가 되고, 1522년(중종 17)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뽑히어 검열로서 벼슬을 시작했다. 그 후 정언(1526), 수찬(1527), 부교리(1528), 교리로 승진하였다. 다시 헌납(1530), 지평(1531), 장령(1533)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1533년(중종 28) 8월 10일에 김안로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박거린(朴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從鱗) 등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그 부모의 벼슬을 추증(追贈)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홍린의 아버지는 병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박홍린은 그 후에도 벼슬에 승진을 거듭하였다. 집의, 우부승지(1534), 직제학을 거쳐 대사간(1534), 도승지(1536), 대사헌(1537), 공조 참판, 그리고 현재 교육부 차관에 해당되는 예조 참판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러나 반대파 사람들은 박홍린의 이러한 승진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때마침 1537년(중종 32) 10월에 김안로 사건이 터졌다.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쫓아내려다가 사형 당한 사건이었다. 반대파에서는 이 사건에 박홍린을 강제로 연루시켜 그해 11월에 벼슬을 삭탈하고 서울 밖으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1538년(중종 33) 3월에는, "나쁜 모임을 만들어 악한 짓을 했다."라는 죄명을 더 만들어 전라남도 고흥군 흥양(興陽)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박홍린에 대한 임금의 사랑은 여전하였다. 박홍린이, "살던 집이 있는 이웃 고을로 귀양 장소를 옮기기"를 원하자, 임금은 쾌히 승락하였다. 그렇지만 반대파에서는 1541년(중종 36) 5월 18일에 임금께 아뢰기를, "박홍린의 귀양 장소를 옮기라고 명령하니, 여론이 해괴하게 떠돕니다."라고 하여, 임금의 뜻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 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예천에 와서 살았다. 부인이 용문면 성현리 중마에 살던 권갑손(權甲孫)의 딸이기에, 처가에서 가까운 용문면 능천리 능내에서 여생을 마쳤다. 명 나라 사신들과 시를 지어 사귈만큼 문학이 깊었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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