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금당실인물1]정탁(鄭琢, 이순신 장군을 살린 좌의정)
작성자관리자 @ 2004.07.24 23:57:31
정탁(1526-1605)은 금당실(龍門面下金谷里)에서 태어나 고사평(醴泉邑高坪里)으로 옮겨 살았다.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본관은 청주, 이충(以忠)의 아들이며 이황(李滉)의 제자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후 교리로서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1568)하고, 두 차례나 사절(1581, 1589)로서 명 나라에 다녀왔고,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좌찬성(左贊成)으로서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가서 명 나라 군사의 내원(來援)에 힘썼다(1593).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이 사형 선고되자 상소를 올려 구제하였다.

정탁은 1600년(선조 33)에 좌의정(左議政)에 올라,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등록되면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연로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고사평에서 머물 때 왕이 충훈부(忠勳府)의 화사(畵師)를 보내어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화상축을 하사하였다. 죽은 후 위성공신에 등록되고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호명면 황지리의 도정서원(道正書院)과 예천읍 서본리의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되었고, 유품으로 영정(影幀)은 물론 유고와 문서 12종류와 관, 벼루, 석금강산 등이 보물 제494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0년에는 예천읍 고평리에 정충사(靖忠祠)를 창건하여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정탁은 성품과 기질이 맑고 밝아 신의를 지키고, 50년 간 조정에 있으면서도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동인인 정탁은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느 파에서도 모함을 하지 못하였다.

학문에 있어서는 유학과 역사는 물론 천문, 지리, 상수(象數), 병법에 이르기까지 능통하여 박학 다식하였다. 유성룡, 노수신과 더불어 '영남 3대가'라 불리어졌다. 매사에 신중하였고, 국사를 논할 때 큰 테두리를 항상 바라보았다.

정탁은 예천읍 고평리에 터를 잡고 고평동계(高坪洞契)를 만들어 예천군민을 교도했으며, 새질서 새생활의 실천에 힘을 기울였고, 고평들을 개척하여 향토 주민의 복지 증진에 정성을 쏟기도 하였다.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마을소식

마을이야기 [1196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ycg.kr/open.content/geumdangsil/news/talk/?i=123603&p=1196 입니다.

이 QR Code는 현재 보시는 <마을이야기 [1196쪽]페이지>의 홈페이지URL 정보를 담고 있는 QR Cod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