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들녘에서 온 편지 이주의 추천 농촌기자단
작성자관리자 @ 2004.07.18 22:24:30
    
   경북 예천군
   김현숙
   

파평윤씨집성촌인 신풍리는 낙동강을 끼고 있으며 넓은 들판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신풍리의 생산품은 주로 게르마늄으로 재배하는 논농사와 청양고추 작목반괴 콩 작목반등이 있으며 마늘, 양파, 깨농사도 짓는다.

 

예천군에도 전국 농림부에서 인정하는 금주의 추천 농촌기자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지보면의 김현숙님이 십니다. 함께 이 기사를 보고 싶습니다.

마을 경로당에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께서 항상 기거 하고 계시고 폐교가된 초등 학교에서는 매주 모교사랑 동호회가 열리고 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는 150 여가구의 파평윤씨 집성촌이다. 마을이 너무 커서 위치에 따라 윗마을 아랫마을이라고 하며, 또 길 건너 있는 마을을 청미라고 부른다. 고려초에 태사 권행이 이 근처에 분음막을 설치하고 한 대(大竹)라고 했으며, 그 뒤 조선 초에 사직 이장준이 보은에서 취향인 이 곳에 이거하였는데 그 처가는 안동권씨이다. 그 뒤에 이씨는 용궁면 가오실로 이거하였지만, 뒤따라서 용궁 무촌에서 참의 윤탁이 이 곳에 이거하였다. 당시에는 이씨와 이웃해서 산 듯하다. 윤탁은 만둔암 윤사석의 후손이다. 그 뒤에 지금의 대죽리와 분리하여 신풍이라 불렀는데 대죽리는 5리가 채 못되게 떨어져 있다.

신풍리는 * 구룡동(九龍洞)

40여가구의 안동금씨 집성촌이다. 김수준이 병자호란에 아버지를 여의고 모친 안동권씨등에 업혀서 외가인 이곳 송라동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용모가 비범하고 골격이 준수하여 7일만에 말을 하고 다락에 올라 가므로 주위에서는 이 마을에 장수가 났다고 법석이었으나, 힘센 장수가 나면 역적으로 모함을 받아 멸문의 화를 입는다고 두려워 하여 이 집에서는 챗돌로 눌러서 17일만에 죽게 했다고 한다.

이 때 마을 앞 중래산에서 용마가 9일이나 슬피 울다가 사라졌고, 마을의 식수가 핏빛이 되었다. 때마침 시주 나온 중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르침을 구했더니 이 우물은 장군수이므로 장수가 먹어야 하는데, 장수가 못 먹게 되니 우물도 그 일을 슬퍼하여 빛깔이 변했으니 식수로 쓸 수 없다고 하므로, 그 중에게 새로 살 터를 구해 달라고 해서 지금의 마을터를 잡아 주고 죽은 어린 장수와 용마의 넋을 달래기 위해 구용동이라고 마을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고 구전된다. 풍수설로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구용쟁주) 명당이 있어서 구용동이라고 한다기도 한다.

* 방앗골, 방학동(放鶴)

신풍 남서쪽에 있는데 지형이 디딜방아처럼 생겨서 방앗골이며, 또 뒷산에 학이 서식하여 방학동이라고도 한다는 남향받이 마을이다.

* 샛방앗골

구룡동과 방앗골 사이에 있으므로 샛방앗골이며 방앗골에서 옮겨 온 파평윤씨들이 살고 있는 30여 가구의 동성촌이다. 앞들이 넓고 기름져서 살기 좋은 南향 마을이다.

* 절골, 사곡(寺谷), 절동(節洞)

고려 말 이조 초에 이곳에 숨어 세상을 등지고 살던 이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고 해서 절동이라고 하고 후세에 절동이 사곡으로 변해졌으며, 후인들이 寺谷이라고 각자한 주춧돌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죽림(權山海의) 순절하였음을 알리는 선충각이 여기에 있다.

* 서당마(書堂洞)

신풍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풍에 살고 있는 파평윤씨를 중심으로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강론할 목적으로 서당을 세웠던 곳에 생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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